국어는 모든 학습의 시작이고 과정이다. 모든 학습의 도구가 되어준다. 과정과 스토리를 중시하는 현 교육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라고 늘 이야기하면서도 큰 아이 국어 교육에는 슬쩍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모국어인데 어느 정도는 하겠지.
그러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첫 중간고사에서 제대로 '앗, 뜨거워!'를 경험하고는 급하게 시험공부를 도와줘야 했다.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가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챙기고 객관식 예문이 될 법한 문학 작품들을 찾아서 읽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기말고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내게 국어를 배우겠다고 하면서 일이 커졌다.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었다고 해도 큰 아이 만삭 때 그만둔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이 나이만큼 나에게도 공백이 있었다. 많이 잊어버렸고 교육 내용도 변해있었다. 2시간을 가르칠래면 5시간을 공부하고 준비해야 했다. 기말고사야 중간고사 바로 한 달 뒤에 바짝 붙어있어서 급하게 함께 했다지만 계속 같이 가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친구들에게 좋은 학원이나 과외를 소개받아오라고 했다.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런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자기 원하는 시간에 맞춰, 선심 쓰듯 공부를 해 주겠다는 태도였다. 열이 칙칙폭폭 끓어오르는데 고등학생을 둔 엄마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방학이면 다음 학기를 예습하고 학기 중에는 내신 준비를 해야 했다. 시험 때는 교과 외 출제될 작품을 챙기고 틈틈이 수능 감도 익혀야 했다.
1학년은 공통 국어, 2학년 때는 문학, 실용 국어, 언어와 매체. 공부해야 할 과목도 범위도 망망대해였다.
그런데 세상에 무조건 마이너스만 있는 일이 없기는 한가보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에서 국문학도 시절을 이어 사랑하고 존경하던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과의 재회는 경이로웠다. 대단하지 않니, 정말 대단하지 않니, 감탄사가 수업 중간중간에 저절로 쏟아졌다.
문법을 가르치면서도 음운 하나, 낱말 하나하나까지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간 예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잊고 있고 소홀히 했던 것들이 바짝 옆으로 다가와 쉴 새 없이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고등국어는 정말 어렵다. 지금이라도 놓을 수 있다면 놓고 싶다.
그런데 둘째까지 고등학생이 되면 내 시간표에 끼어들겠다고 선언하니 몇 년간은 해방되기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