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냐 May 02. 2021

백묘국은 손 쓸 틈도 없이


 동생은 얼마 전까지 꽃집을 했다. 조카가 제일 처음으로 배운 단어가 ‘엄마’도 아니고 ‘꽃’이었기 때문에. 조카는 말도 제대로 못 할 때부터 벚꽃 나리는 걸 구경하길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언제든 꽃을 볼 수 있게 해 주어야겠다고. 나는 종종 물건을 떼기 위해 화원과 꽃시장에 동행했다. 생전 처음 보는 식물들을 구경하는 건 즐거웠다. 우울해지고부터 식물 키우는 데 관심을 갖기도 했더랬고. 처음엔 저렴한 테이블 야자와 사계 장미, 이오난사 같은 것들을 사서 꽤 오래 살려 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퍼지고 새 촉을 내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어느 정도 식물 돌보는 일에 익숙해지자 그중에서도 특히 잘 살리는 종류가 생겨났다. 진드기가 낀 거베라도, 동백도, 장미도 잎사귀 하나하나를 매일 닦아 살려냈다. 참 징그럽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팠던 장미가 처음으로 꽃을 피워내고, 다음에 피어날 꽃을 위해 원예 가위로 비스듬히 절화 해 화병에 꽂아 놓았을 때는 무척 뿌듯했다. 죽어가던 해국이나 거베라가 생기를 되찾으며 끄트머리부터 빳빳해질 때. 그럴 때. 아팠던 내 정신머리도 다시 이렇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고 조금은 희망에 찼다.



 그런데 요놈의 백묘국은 항상 손 쓸 틈도 없이 죽었다. 화원에서 핑크페페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한눈에 반해 몇 개를 집어왔더랬다. 하얀 솜털이나 이름이 독특하고 예뻤다.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동행한 아빠를 설득해 소량을 매입했다. 그런데 페페만 건강하게 분양되어 나가고 백묘국은 이틀을 못 가 죽었다. 인터넷을 뒤져 적정 생육환경을 찾았다. 그대로 해보았다. 그래도 죽었다. 물 주고 햇빛 쬐고 바람 쐬이는 방법을 여러 조언대로 바꾸어 보았다. 그래도 죽었다. 순식간에 화분 수어 개가 하얗게 죽었다. 원래도 하얘서 죽어도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찜찜하다는 얘길 들었다. 나도 내 손으로 자꾸 생명을 죽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결국 포기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우울해지지만은 말자고 다짐한다. 나랑은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자고.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는 그런 가능성도 정신건강을 위해 접어두자. 대신 랜선 너머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다른 분들의 백묘국을 보며 그저 감탄한다. 화원의 백묘국들을 보며 욕심을 삼킨다. 내 손에서 죽는 것보다는 더 좋은 분들께 가는 게 옳다고. 오늘도 마음을 비운다.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무언가를 들이고 마음 주는 게 아니라고 되새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돌 산업의 구조를 페미니즘적으로 바라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