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짝사랑은 언제나 조용했다.
사춘기 시절, 내 가슴엔 나만의 테리우스가 있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었던, 잘생긴 아이였다. 6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남녀 짝꿍으로 자리를 배정해주셨고,
나는 그날부터 단 한 번도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수줍음이 많던 나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그 아이와 나란히 앉아
하루하루를 조용히 보냈다.
졸업 후,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어느 날 글짓기 시간, 그는 부모님의 이혼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연민과 끌림을 느꼈고, 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그와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내 시선은 늘 그를 쫓았다. 귀는 그의 목소리에만 주파수를 맞추고, 마음은 두꺼운 일기장 위에서 그의 이름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학교에 가는 아침마다 설레었고, 그를 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반짝였다.
그 아이는 내가 좋아하던 만화 캔디캔디의 테리우스와 닮았다. 반항적인 듯 슬픈 눈빛, 말수가 적지만 묘하게 끌리는 분위기.
어느새 그는 나만의 테리우스가 되어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 내 맘 안에만 있던 짝사랑.
그 아이는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떠났고, 나는 고향에 남았다. 주말이면 혹시나 고향에 오는 그를 만날까 싶어 일부러 학교에
남았다. 막차를 기다리며 버스를 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같은 버스를 타도 그는 맨 뒷자리에 앉았고, 나는 부끄러워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앞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았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벅찬 기쁨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고 나만의 테리우스는 비밀 일기 속에 묻혔다.
2화 그날, 고백 아닌 고백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부모님은 내가 바로 취업하길 원하셨지만, 나는 기어이 대학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입학금만 도와달라며 밤낮없이 설득했고, 결국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려 알바를 쉬지 않고 했다.
가끔 고향 가는 버스를 타면, 그 아이가 늘 앉던 맨 뒷자리에 나도 모르게 앉게 되곤 했다.
순진했던 그 시절, 말 한마디 못 건넸던 그 아이, 내 기억 속 그는 여전히 멋진 테리우스의 모습으로 가슴에 남아 있었다.
7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오직 한 사람, 그 아이만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나의 비밀 짝사랑을 예쁘게 포장하며,
나만의 서사를 이어가는 시간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그 아이의 집을 지나칠 때면 괜히 가슴이 쿵닥거렸다.
대학교 졸업 후 사회초년생이 되어 현실을 마주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은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성실함’ 하나만으로, 나는 버텼고 적응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20대 후반, 짝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이 찾아왔다.
나는 나의 사랑과 장래를 약속했고, 다가올 미래를 그리며 하루하루가 설렘으로 행복했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초등학교 동창회 소식을 들었다. 작은 시골학교라 학급도 한 반뿐이었고, 학급수가 3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몇몇 친구들이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 아이는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왜 그땐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지금은 그 아이 눈을 똑바로 볼 수 있을 텐데.’
피식 웃으며, 나는 동창회 장소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반가워했고, 그 아이도 그 자리에 있었다.
가볍게 인사하고 앉았지만, 마음속엔 작은 파도가 일렁였다. 그 아이 얼굴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세월이 지나 보니 이게 뭐라고 그토록 가슴앓이를 했을까 싶어 웃음이 났다.
술기운이 돌 무렵, 그 아이가 내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왔다.
“잘 지냈어?”
“응, 넌?”
몇 년이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어제 본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술기운을 빌려 가슴깊이 묻어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야, 내가 너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냐? 자그마치 7년이다 7년 바보야 하하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온통 네가 내 세상이었어.
그냥 말 한마디 못한 채 짝사랑하다가, 내 테리우스를 내 일기장 깊숙이 숨기고 마음에 묻었지. 하하.”
내가 가슴을 쥐어뜯는 시늉을 하자 다른 친구들이 나를 놀리며 아이처럼 깔깔 웃었다.
그 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야, 너… 내가 부산에서 행운의 편지를 몇 번이나 보냈는데 몰랐냐?
나도 너 진짜 좋아했었는데.”
그 말에, 시간도 술기운도 잠시 멈춘 듯했다. 둘 다 타이밍이 엇나 버린 거였다.
둘 다 말없이 웃었다. 그땐 정말, 우리 둘 다 너무 순수했다.
3화. 너무 늦어버린 소식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며 정신없이 살아왔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고, 나 자신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사춘기 시절의 나, 일기장 가득 써 내려갔던 짝사랑의 주인공은 이제 내 일상에선 아주 먼 기억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초등학교 동창에게서였다.
그 아이는 수화기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놀라지 마…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너 기억하지? 너의 테리우스…그 아이, 얼마 전 교통사고로… 떠났대.”
아버지 첫제사를 지내고 가던 길에 덤프트럭과 정면충돌하면서 손도 써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별 탈없이 좀 잘 살지. 안타깝고 그냥 마음이 조용히 서늘하게 아파왔다;
나는 걸레질을 멈추고 수화기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늘 앉아 있던 버스 뒷자리가 생각났고, 내가 몰래 훔쳐보던 그 아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참 착한 아이였다.
내 학창 시절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해 준 아이.
들킬까 봐 너무나 조심스럽게 소중히 조용히 품고 있던 내 작은 세상의 주인공.
이제는 정말,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와 함께한 기억 중 웃으며 눈을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고, 짝사랑만 했고, 한참 후에야 그 마음을 웃으며 꺼내 보였었다.
너무 늦게 알았고, 너무 늦게 말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시작되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 아이가 있었기에 내 10대는 가슴앓이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반짝였고,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추억하며 사랑한다.
4화. 또 시작된 짝사랑
벌써 내 나이 오십 대 후반.
아이들은 이제 각자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고, 나 역시 이제 내 인생의 발자국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가정이라는 둥지를 지키느라, 어쩌면 오랫동안 ‘나’라는 사람을 잊고 내려놓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의 끝에서 긴 숨을 내뱉으며 거실 한편에 앉아 조용히 티브이를 켰다.
평소라면 그냥 흘려보냈을 TV프로그램인데, 그날따라 그 가수의 노래는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화려한 무대 위, 누군가가 ‘열아홉 순정’을 부르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가사, 익숙한 멜로디. 그리고… 노래하는 그 사람.
나는 트로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노래 참 잘하네.” “잘생겼네”하고 넘겼지만, 어느새 그의 무대를 찾고, 그의 말투에 귀 기울이고,
그의 웃음에 따라 웃는 내가 있었다. 참 별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에 ‘최애가수’ 이름으로 폴더를 만들고, 그가 나오는 방송을 기다렸다.
굿즈를 들고 공연장을 간 적도 있었다. 그 가수를 보면서 소리 지르고 환호했다. 나 같은 사람이 왜 그리 많던지....
중년여성들의 스트레스가 공연장에서 다 표출되는 모양새다.
‘미친 아낙’ 같다고? 그래, 미쳤으면 좀 어때서.
요즘의 나는, 그의 존재 덕분에 웃고 즐거워하고 있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것, 그 사람의 웃음이 내 기분을 끌어올린다는 것.
그건 짝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를 향한 마음처럼, 말도 못 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그 시절처럼.
지금도 나는 말없이 그 가수를 응원하고 바라보고, 조용히 가슴은 뛰고 설레고 있다.
지금, 나는 내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나이에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마음이 아직 살아 있고 또 다른 사춘기, 50대에 맞는 오춘기가 아닐까?
중년의 팬심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삶의 균형을 지탱해 준다.
어릴 땐 짝사랑이 아팠고, 청춘 땐 사랑이 벅찼고,
이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기에 충분하다.
나의 테리우스는 추억이 되었지만,
지금의 ‘그 사람’은 현재를 위로해 주는 또 다른 테리우스다.
내 마음속 짝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