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던 시절

by 작은 집 깊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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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다 남편의 앨범을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사진이며 군대 시절 사진,

그리고 수십 통의 연애편지가 곱게 모셔져 있었다.

"건강 조심해", "너무 보고 싶어", "사랑해"

간직된 편지마다 진심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어떤 편지엔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할 것 같다”는 문장이 덜컥 적혀 있기도 했다.

그렇게 애절했는데, 왜 헤어졌을까?

나는 남편을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

“지금이라도 도로 모셔가셔도 되는데요?”

남편은 손사래를 치며, 자기는 그냥 받기만 했다고 했다.

그래도 그 모든 편지를 그대로 간직해 온 걸 보면,

그 사랑이 귀하고 고마웠던 기억이었겠지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편지를 참 좋아했다.

휴대폰도, 메신저도 없던 시절.

손편지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이었다.

어버이날이면 일부러 우표를 붙여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고,

라디오에 사연을 써 보낼 때면

사연이 소개되길 기대하며

라디오 앞에 귀를 쫑긋갖다 대기도 했다.

큰 강 옆 시골집에 살던 나는

장마철 홍수가 나면 빈 병에 편지를 써서 넣어 띄워보냈다.

언젠가 누군가 그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해주지 않을까.

그마저도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짝사랑하던 아이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일기장 곳곳에 꽂혀 있었고,

‘행운의 편지’라는 것도 적어 여기저기 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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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오빠가 군대에 갔다.

둘째 삼촌이 군대에서 사고로 순직하셨던 터라,

엄마는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다.

어린 마음에 뭔가를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오빠에게 편지를 썼다.

가족 소식, 마을 이야기, 상상의 인물로 연재하듯 쓴 소설까지.

우체통이 없는 주말이면,

월요일 아침에 한꺼번에 두통의 편지를 어김없이 보냈다.

오빠는 그때 나한테 고마워하며 말했다.

“여자친구도 아닌데,

3년을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쓰냐고 다들 놀라워했어.”

부대에서는 내 편지를 기다리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고,

오빠는 덕분에 군 생활이 덜 힘들었다고 했다.

엄마도 내 편지 덕에 한숨을 줄이셨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도 나는 매일 편지를 썼다.

우리는 거의 매일 데이트를 했고,

집에 돌아와 그날의 감정과 고마움을 일기처럼 써서

다음날 아침 우체통에 넣는 것이 나의 습관이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

그 자상함이 고마워서,

그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까봐,

나는 매일 편지를 썼다.

수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남편에게서 답장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그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편지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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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아들이 스무 살이 되자

한 학기 대학을 마치고 자원입대를 하겠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조금 더 미뤄보라 설득했지만

“어차피 겪을 일이니까”라며 아들은 담담했다.

아들이 입소 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손편지 대신,

부대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면 프린트해 전달된다는 소식에

자판으로 편지를 남겼다.

내 사랑하는 아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돌아온 답장은 단 한 장.

“나 000으로 자대 배치 받았어요.”

딱 한 줄.

나는 그걸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래도... 니 아빠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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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체국에서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 하나가 왔다.

편지를 쓰던 시절은 그렇게 멀어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가끔 메모장에 나를 향한 편지를 쓴다.

이제는 메모장에 혼자 쓰는 짧은 편지들이 전부지만

그 글들 또한 언젠가는,

내 마음을 다독여줄 추억의 한페이지가 되길....

그렇게 오늘도, 나는 한 통의 마음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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