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직장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가 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갔지만 “수술 불가”라는
말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처음 병문안을 갔을 때,
친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친구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아무 위로도 닿지 않는 그 시간은 너무 무력하고 아팠다.
며칠 후 다시 병문안을 갔을 때,
친구는 이전과 달리 한결 편안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옅은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좀 어때? 자주 못 와서 미안해...”
내 말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바쁜데 와줘서 고마워.
나 요즘 마음이 참 편하고 은혜로워.”
친구의 동생 말에 따르면,
교회에서 작은 그룹이 와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해준다고 했다.
그 위로가 친구의 마음에 깊이 닿았던 모양이다.
“비록 믿음의 시간은 짧지만,
나도 결국 또 다른 세상에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이제 괜찮아.”
그렇게 말하던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먼 여행을 떠났다.
그 마지막 미소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며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지만,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여든여덟, 하지만 주름 하나 없이 고운 얼굴.
언제나 “고마워”, “수고 많아”, “괜찮아”라는 말을
먼저 건네던 온화한 할머님이셨다.
신장투석을 해야 했지만,
생명을 억지로 붙잡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셨다.
매일 종교 방송을 들으며 기도하시던 그분께 물었다.
“할머니, 매일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자식들한테 짐 되기 전에 가게 해달라고.
기저귀 하는 일 없이,
깨끗하게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할머님은 돌아가시기 2주 전,
사위들과 며느리만 따로 불러
내 자식들을 잘 부탁한다며 용돈을 쥐어 주셨다고
한다. 마치 작별을 준비하듯이....
그리고 어느 날,
화장실 가시다 주저앉으신 후,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으셨고
그 후 일주일 만에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마지막까지도 의료진과 간병인들에게 고맙다고
전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병원 사람들 모두가 숙연해졌다.
할머니의 마지막 날은 겨울임에도 이상하리 만큼 따뜻했다.
따스한 햇살이 봄처럼 내리던 그날,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하늘도, 아마 그분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한 것이 아닐까?.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평안'이 무엇인지를 마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믿음은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용기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남겨질 이들을 향한 마지막 사랑이었다.
내가 경험한 이 두 사람은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조용히, 따뜻하게 맞이하는 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힘은,
'믿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내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다면,
어떤 종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진심으로 기도하고 덕을 쌓고 베풀며 살아간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복은 깃든다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믿음의 힘이 닿아, 작은 평안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믿음은 상황을 바꾸진 못해도,
힘겨운 마음에 위로가 쌓이고,
그 위로는 결국 나를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