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기적

by 작은 집 깊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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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구, 그 한명으로도 충분하다.'


살아가면서 많은 친구가 필요 없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한두 명이면 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살았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뒤돌아보니, 그 말이 참 맞는 말이었구나 싶다.

젊은 시절, 남편은 지인도 많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니 사교성도 좋았다.
늘 주변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대표적인 집순이에다 여행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낯가림이 심해서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모임도 단조롭고, 친구의 수는 많지 않다.


'관계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


2000년도 IMF.
남편의 사업이 부도나고 법적인 문제가 얽히며 한동안 경찰서에 머물게 되었다.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시련 앞에서 그저 눈물만 흘릴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의 나는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시골 정서 가득한 어설픈 사회인이었다.
공부만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직에 들어가,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보며 소소한 삶에 만족하던 순진한 새댁이었다.

남편은 지인의 이름을 적어주며,

찾아가 상황 설명을 하고 방법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 지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간곡히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앞에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 뒤로는 연락조차 없었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돌아오는 답도 없었다.
그 많던 친구들과 지인들은, 우리가 어려워지자 눈에 띄게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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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의 경계'


그 시절, 나 역시 관계의 경계를 분명하게 경험했다.
내 고통에 공감하고 도우려는 부류가 있었고,

내 힘겨움을 가십거리 삼아 입방아에 올리는 부류도 있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내가 이를 악물고 일어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안에 있던 ‘젊음’이라는 재산과 ‘긍정의 힘’을 꺼내 들었다.

어려운 시절, 친정엄마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엄마는 늘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막내 여동생은 예외적으로 아끼셨지만
나와 언니에겐 언제나 남 대하듯 냉정하셨다.

작은아이 분유값이 없어 막막할 때도, 엄마는 10원 한 장 건네지 않으셨다.
반면 부유한 사촌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땐 100만 원이라는 큰돈을 선뜻 내어주셨고,

그걸 자랑삼아 이야기하셨다. 서운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고마운 친구'


현실을 도피하듯 남편은 자취를 감췄고, 나는 아이 둘을 책임져야 했다.
그때, 나를 진심으로 도와준 친구가 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 써."
매달 얼마씩 보내주던 그 친구의 마음은 돈보다 더 큰 위안이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나중엔 꼭 갚겠다고 약속하며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자리를 잡았을 때,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너라는 친구가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어. 고마운 마음을 갚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뻐.”

그 친구는 지금 은행 지점장의 타이틀을 가진 당당한 커리어우먼이 되었다.
친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일처럼 기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부처같은 친구'


또 한 사람.
마음이 힘겨울 때마다 나는 이 친구를 찾는다.

삶을 느리게 살아가고, 이해의 폭이 깊고 넓은 사람.
나는 이 친구를 ‘살아 있는 부처’라 부른다.

결코 녹록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나를 다독인다.
잠시 이야기만 나누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정도다.

친구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된장, 반찬, 식재료 등 이것저것 챙겨주려 애쓴다.
거절해도 막무가내다.
동갑이지만 친정엄마 같고, 큰언니 같고, 한없이 든든한 나무 같은 존재다.

우리는 머지않는 미래에 각자 고향 중 한곳에 정착해,

이웃하며 살기로 약속했다.
같은 동네에서 텃밭을 가꾸고 건강한 노후를 즐기다가,

그렇게 살다가 하늘이 부르면 조용히 떠나자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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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는 중년'


얼마 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결혼 날짜를 잡았어.”

어느새 우리가 며느리를 맞을 나이가 되었다.
어린아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벌써 자라 결혼을 준비한다.
친구의 기쁨이 마치 내 일인 양 들뜨고, 내 마음인냥 벅차다.

“진심으로 축하해. 우리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기쁨은 나누고 슬픔은 함께 견디자.”


요즘, 친구들이 있어서 내 중년은 외롭지 않다.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으로도, 살아갈 힘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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