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나로 살고 싶은 나이

by 작은 집 깊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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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손주의 시대, 부모의 자리


"어깨도 아프고,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네."

같은 병동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한 분이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에서 3개월 된

손녀 육아를 돕고 오셨다.


손녀의 사진을 보여주시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아들네 집에는 신기한 육아 용품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온도를 맞춰주면

딱 맞는 양의 물이 나오는 정수기,

젖병 건조까지 책임지는 소독기,

그리고 일자형 탁자 위에

순서대로 정리된 육아 전용 기기들까지.

"정말 우리 애 키울 때랑은 차원이 다르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으셨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인터넷으로 육아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아이 피부에 생긴 작은 트러블조차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시어머니 앞에서도 육아 철학을 또렷이 밝히고,

부탁할 건 확실히 부탁하는 모습에

기가 찬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또 다른 선생님은 손주 돌보는 시간 동안

TV를 켜지 못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고

하소연하셨다.


요즘 부모들은 또,

아이가 화면을 보는 걸 아주 싫어한다며

“TV 보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하고

고개를 저으셨다.

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은 한마디
"그래도, 자식보다 손주가 더 예뻐."

나는 아직 손주를 안아보지 못해

그 기분은 모르겠다.

하지만 아기를 워낙 좋아하는 내 성격을 생각하면,

막상 안게 된다면 아마 눈물이 날 만큼

사랑스러울 것 같다.


2화. 젖병을 태워먹던 시절


문득, 큰아이 키우던 시절이 떠올랐다.

젖병을 가스불에 삶다가 깜빡 졸아 태워먹던 기억,

물 온도를 맞춘다고 손목에

몇 방울씩 떨어뜨리던 그 감각들.

어느새 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육아에는 언제나 미묘한 신경전이 따랐다.

특히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조심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요즘 며느리들처럼

또렷하게 자기 의견을 밝히고

갈등의 작은 불씨를

애초에 잠재우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속앓이만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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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며느리로 산다는 것


딸아이가 세 살이었을 무렵,

퇴근하고 시댁에 아이를 데리러 갔었다.

어머님은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자르지 않은 당면을

손으로 쭉 올려 입에 넣어주고 계셨다.

아이 목이 막힐까 걱정스러웠지만

말 한마디 못했다.

형님이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 역시 눈짓으로 답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속상함을 토로했다.
다음 날, 시댁에 갔더니 어머님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아이 셋 키워도 별일 없었어.

너처럼 별나게 굴지도 않았고.
내가 못 먹일 것 먹인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못마땅했냐?"


그리고, 한 마디 더.
"이래도 우리 집안엔

몹쓸 병 걸려 죽을 사람도 죽은 사람도 없어."

그 당시 폐암 말기였던

나의 친정아버지를 빗대어하신 말씀이다.
가슴 깊은 상처가,

그 말 한마디로 문신처럼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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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친정아버지 그리고... 먹먹함


그때 아버지는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에

폐암말기의 깊은 병마와 싸우고 계셨다.

다정다감하진 않으셨지만,

책임감 하나로 고생만 하신 불쌍한 아버지.

아버지의 힘겨운 인생사를 잘 알기에 나는

아버지 앞의 큰 시련이 원망스러웠고 가슴 아팠다.

그런 내 마음을

어머님이 공감해 주신 줄 알고 있었기에

더 서운했고, 서러운 나머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언젠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지면 위에 올려보려 한다.
마음 한켠의 멍울을

조금은 비워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5. 시어머니의 별세


작년, 시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직장암에 이어 뇌출혈까지, 많이 아프셨다.
삶의 마지막까지 이러저러한 일들로

나에게 늘 미안해하셨고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머님의 인생 또한 고달픔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좀 더 잘해드릴 걸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런데도 참 희한하다.
친정엄마와는 큰 갈등을 겪었어도

금방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는 하는데,
시어머님의 그 한마디는

여전히 내 가슴에 아픔으로 새겨져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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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엄마도 오롯이 '나'로 산다.

육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힘이 든다.
요즘은 아이 하나에 온 가족이 총 출동하고,

아이는 상전처럼 떠받들어진다.
딸아이는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나보고 키워 달라며 웃는다.
하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제는 어느 자리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나’로만 살고 싶다.
아내도, 엄마도, 며느리도 아닌 그냥 ‘나’로...

돌아보면,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미친 듯이 살아왔다.
이제는 지쳐버린 이 중년의 나이에,

또다시 육아 전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남은 인생의 조각,
그건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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