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근무라 낮엔 그냥 잠만 자기엔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산책 갈 채비를 하고 나섰다.
집에서 도보 30분 거리, 그 산 둘레길은
복잡한 내 심정을 단순함으로,
힘겨운 마음을 잔잔한 평화로 바꿔주는 곳이다.
마치 종교처럼, 나를 보듬어 주는 그 길.
올해 초,
나는 이 길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견디는 힘을 얻었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얻었다.
오전 10시.
기온은 벌써 한여름 더위 못지않다.
그래도 오늘은 잠 대신 자연을 선택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나만의 속도로 걷는 이 시간이 좋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었다.
며칠 전,
산책을 같이하자던 친구가 떠올라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스케줄이 있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괜찮다.
혼자 걷는 길도 익숙하고, 때로는 더 깊이 위로를 받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걷는다.
발 아래선 개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작은 풀잎 위에는 꽃이 피어나
서로의 얼굴을 비비고 있다.
여름의 초입이라 그런지
나무들의 숨 내음은 더 짙어지고,
새들은 더위를 즐기듯 한껏 지저귄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
무인 채소가게를 지키는 고양이,
귓가를 스치는 모기와 작은 곤충들...
이 모든 풍경이
오늘 혼자만의 여름을 더욱 깊고 특별하게 만든다.
또 다른 나를 만나 색다른 여름을 품게 한다.
약수터 근처 오르막에 다다를 즈음,
오디오북이 끝이 났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차례.
그의 노래는 내 마음에 작은 울림을 준다.
애인, 연인, 이별, 타향살이, 감사...
갱년기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시절,
내 손을 잡아주던 노래들이다.
고마운 노래.
그리고 고마운 가수, 김용빈.
‘김용빈 파이팅!’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지어진다.
내려오는 길에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는 늘 서로의 이야기로
고단한 하루를 달래곤 한다.
나는 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의 이야기로 통화하려 한다.
직장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그녀에게
나와의 통화가 작은 휴식처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따뜻한 그녀와의 긴 통화는
나에게도 위로와 공감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조금씩 감싸 안고 있다.
지금 이 혼자만의 자유 시간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행복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있다면?”
이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지금이 좋아. 지금 이대로.”
가시덤불 헤치듯 걸어온 삶.
그 걸음들이 태엽처럼 되감긴다면
나는 지쳐서 다시 걷지 못할 것 같다.
누군가 말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이 인생이다”라고.
정말 그렇다.
집에 도착해 단호박을 찌고,
오이 탕탕이를 만든다.
입안 가득 담긴 맛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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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히 사뿐히 다가오세요~
살며시 살며시 녹아드네요...”
오늘도 그렇게,
여름의 한 페이지를
조용히, 그리고 꽉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