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대 하나가 똑 부러졌다.
허무하게도,
서너 해의 여름을 함께한 녀석인데....
버리기 아깝다고 말했더니
돌아온 현실적인 조언.
“버려. 요즘 양산 얼마나 싼데.”
언니가 슬쩍 핀잔을 주듯 말한다.
하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나를 지켜주던 존재였기에,
모양이 조금 망가졌다고 쉽게 버리기엔
마음에 걸렸다.
요즘은 오랫동안 집안에 머물렀던 물건들이
새삼 정겹게 느껴진다.
열 살이 넘은 냉장고,
매일같이 무거운 빨랫감을 감당해 주는 세탁기,
한여름 더위를 쫓아주는 에어컨,
낡은 소파, 함께한 시간만큼 익숙해진 TV까지.
크든 작든
함께한 세월만큼 애착이 깃들어
이젠 정겨운 친구처럼 느껴진다.
나는 원래부터 물욕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변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 말했다.
“양산 대가 하나 부러져 쇼핑센터 갔다 왔어요.”
양산 하나 사러 갔다가
충동구매로 이것저것 사버렸다며 웃는다.
“예전엔 우산 고쳐주는 곳도 있었는데
요즘은 찾을 수가 없네요.”
그 선생님도 몇 해를 함께한 양산이라
버리긴 아깝고, 허전하다고 했다.
그 마음이 나와 닮아 있었다.
퇴근길,
저만치 앞서 걷는 한 중년 여성을 보며
웃음이 났다.
그녀의 양산도 대 하나가 부러진 채
태양을 가로막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중년이 되면 마음씀씀이도 서로 닮아가는 걸까.
어스름한 저녁, 공원 산책길을 찾았다.
삼삼오오 모인 중년 여성들의
맨발 걷기 시간인지
공원은 웃음과 이야기로 북적였다.
그 모습은 마치 여고 시절의 소녀들 같았다.
각자의 인생에 할 말이 많을 그분들.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며
엄살 부리던 내가
조금 부끄럽고 민망스러웠다.
나는 평지를 피해 굽이진 산길을 택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이 길이 좋다.
자연과 가까이에서
혼자 사색할 수 있는 고요한 길.
길 따라 켜진 작은 무드등마저
고맙고 아름답다.
예부터 "쉰이 넘어야 철이 든다" 했던가.
이제야 나도 철이 드는 걸까?
가슴이 시린 것도,
벅차오르는 희열도,
안타까움과 측은지심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함으로 위로받는 나를 알게 되었다.
가끔 마음이 힘겨울 때도
어김없이 작은 틈 사이로
감사함의 한줄기 빛이 스며들어와
조용히, 그러나 깊이
나를 다독여준다.
몇 해의 여름 동안 나를 지켜준 양산.
이제 나와 인연이 다했다면
그저 "고마웠다"라고 인사는 하고 싶다.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귀하고 큰 역할을 했으니까...
나도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이었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