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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5. 2024

너 좋은 가사 많이 쓰라고 그러는 거야.

유희열이 20대 후반에 쓴 <익숙한 그 집 앞>이라는 삽화집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별에는 징조가 있다. 헤어질 때가 되면 그녀는 까닭도 없이 많이 운다. 새벽에 통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울고, 식사를 하다가도 갑자기 운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그녀의 울음 앞에서 불안해진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녀에게 물어보었다. 요즘 왜 그렇게 우느냐고.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 좋은 가사 많이 쓰라고 그러는 거야."
(p.86) 유희열, <익숙한 그 집 앞>, 중앙M&B, 1999             

                 

겨우 열섯 살이었던 나는 '사랑' 'ㅅ'자도 몰랐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찌르르했다. 슬프고도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어떤 남자를 앞에 두고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너 좋은 가사 많이 쓰라고 그러는 거야." 하고 말하며 돌아서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어느 쪽이 되었든 꽤나 그럴듯한 이별장면이었다. '럼. 이별에 의미가 있다면 정도는 되어야겠지'

후로 이 말은 이십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떠오르곤 한다. (물론 실제로는 써먹지도,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그녀는 몇 곡의 노래가 되고 몇 곡의 가사가 되었을까. 때때로 글로도 목소리로도 표현되지 않을 때는 그저 몇 마디 멜로디가 되기도 했을 테고, 그것도 안되면 노트 귀퉁이에 희미하게 번진 스케치가 되기도 했겠지. 별안간 그녀가 부러워진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다면, 살면서 예술하는 사람 한 명쯤 만나 깊이 사랑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글이나. 춤이나 사진이나 영화나... 자기 안의 것을 꺼내어 없던 걸 만들어 내는 게 예술이라면 그게 뭐가 됐든지간에. 그러면 헤어진 후에도 그 사람의 작품을 보며(또는 들으며) '혹시 나를 생각하며 만든 걸까' 마음껏 착각을 하고 나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고 어떤 시절을 영원히 그리워할 수도 있을텐데.

이제껏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거나, 남이 주는 걸로 키보드나 두들기는 사람만 만났던 것이 조금 아쉽다. 역시 그것밖에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도.


아마도. 가사가 될 만한 사랑을 할 일은 이제 없겠지?



뭐 사랑이 아니라도, 앞으로 일어일. 아니 앞전에 일어났던 일들도 다, 나 글 많이 쓰라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까.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뭐가 되든 안 되든. 그냥. 그것도 제법 그럴듯한 수용의 방법인 것 같아 하는 말이다.


https://youtu.be/p6xcVEUOlM4?si=oZA7ZWA0oDVgSIek

익숙한 그 집 앞. (내가 많이 아끼는 음반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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