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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02. 2024

다정한 아빠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어제였나 그제였나.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에서 빨래를 개 무심코 티비를 틀었는데 김원준과 신성우가 나왔다.

'어머, 저 사람들 결혼했었나? 애들이 저렇게나 어리다고?'

애 낳고 난 후로는 육아예능을 거의 보지 않는데, 그 날은 그옛날 멋드러지던 연예인 오빠들의 아빠된 모습과, 그저 귀엽기만 한 아이들의 모습에 빠져 눈을 뗄 수없었다. 티비를 보면서 기계처럼 손을 움직이다보니 산더미같던 빨래납작하게 개켜져 차곡차곡 쌓였, 어느새 티비 속 화면과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 않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훌쩍, 훌쩍,.. 어느 순간 고요한 거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 당황스럽게도 나는 울고 있었다. 훌쩍임과 함께 눈물 콧물 계속 나와서, 잘 개놓은 아이의 런닝 한 장을 손수건처럼 들고 양 볼을 닦아야 했다.


어쩜 저렇게도 다정할까. 물론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이 다는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집되고 연출된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야말로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중년의 아빠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살면서 한번도 가지지 못했던 그것, 내 아이들에게 주지도 못했던 그것, 그런 아빠, 그런 눈빛, 그런 말, 그런 따뜻함, 그리고 든든함... 그런 것이 생각 서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밖에도 둘째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설아의 아빠를 볼 때, 매일 아침 학생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손발톱도 아직 깎아준다는 앞자리 주임님의 남편 이야기를 들을 때, 퇴직한 아빠와 둘이서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러 가곤 한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을 때, 공원이나 카페에서 살뜰히 아이를 챙기며 웃어주는 남자를 볼 때 등등.


다정한 남의 아빠는 종종 나를 울게 만다.


나는 아빠의 사랑을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 기억한다.

"느그 아빠는 니 아장아장 걸을 적에 니만 데리고 나가서 과자 한 개 사주고 동네 한바퀴 돌고 그랬다" 하는 엄마의 말.

"니 아빠 그때 니 어디 하수구에 빠져 죽었나 싶어가지고 온 동네 하수구를 다 들여다보고 다니고..." 하는 할머니의 말.

그 몇 마디 말에 기대어 나는, 아기였던 내 손을 잡고 동네를 돌다 작은 슈퍼에서 계란과자나 사또밥을 한봉지 사주는 아빠를 그려보고. 나를 잠깐 잃어버린 후 사색이 되어 하수구까지 뒤지는 아빠를 상상. 그것으로, 아빠가 나를 사랑고 나는 사랑받는 딸이었음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보며 살아온 아빠는 늘 거나 바쁘거나 아프거나 다투거나 화내는 중이었다. 입을 꾹 닫은 아빠. 웃지 않는 아빠. 마지못해 사는 듯한 아빠. 아빠가 된 것을 후회하는 듯한 아빠. 나 역시도 아빠입을 꾹 닫고 지도 않은 채 남보다 못한 부녀 사이로 지고, 그런 이유로 직까지도 나는 아빠에게 전화 한 통 걸지 못하고 일상적인 소식도 늘 엄마를 통해 전해듣는다. 빠는 이제 멀쩡하던 이가 빠지고, 먹어도 먹어도 야위어지고, 장성한 자식과 손주들이 와도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 한다.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얼른 눈을 다.


어릴 때는 그냥 아빠들이란, 특히 경상도 아빠들이란 다 그런 줄 알았다. 날이 갈수록, 다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는다. 나의 아빠는 그냥 그런 성격의 사람이니까. 가 곰살맞게 굴지 못하는 것처럼 런 성격이란 대개는 타고 나는 거니까. 그래도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가정을 지키고 있으니까. 아빠도 어쩌면 애교 많고 말 많고 웃음 많은 남의 집 딸들을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지도 모르니까.


다만 나는 좀 그리울 뿐이다. 겪어보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그리움과 갈망이 있는데, 이런 감정 또한 것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다.



년간 연락이 끊겼던 전남편은 이제 종종 아이와 통화하는 사이로 지낸다. 지만 사도 모른 채 지내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아이는 아빠를 어려운 손님 대하듯 한다. 결코 먼저 연락하지는 않고, 어쩌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오면 네..네.. 몇 마디 대답만 하다가 한숨을 쉬며 끊는다. 슬픈 것은 그런 태도와는 달리 터질 듯 완연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숨쉬며 전화를 끊어놓고 한동안 흥분을 못 이겨 온 집안를 방방거리며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아이가 품고 있었을 그리움,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과, 앞으로도 이 아이가 안고 살아가야 할 마음 한 켠의 구멍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저려온다.


 막연하고 실체없는 다정한 아빠에 대한 그리움, 잘 보듬으며 잘 다독이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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