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원 (완)

by 서인


감옥은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었다. 그곳은 인간의 감정이 폐기되는 곳이었다.
서인은 AI 교도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고,
AI가 만든 식단을 받아 조용히 먹었다.
샤워 시간도, 독서 시간도, 산책 시간도 AI가 정했다.
의사소통은 불필요했다. 누구도 누구의 눈을 보지 않았다. “죄수 727. 독립 행동 금지.” 말조차도 인간이 아닌 기계가 시켰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 같았던 존재는, 같은 방에 수감된 한 노인이었다.
이청백. 과거 유명한 사업가이자 연쇄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자였다. 마약, 성범죄, 폭력, 살인. 모든 쾌락을 좇은 끝에 남은 것은 병든 육체뿐이었다.
“죽는 게... 무서워.”
어느 날 이청백이 말했다.
그는 서인을 보지 않고 벽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무 많은 걸 가져봤는데도... 죽음 앞에선 다 무의미하더라고. 내가 죽으면 이 세계에선 아무도 날 기억 못 하겠지.”
서인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도 누군가를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자신조차도 기억 속에서 도망치려 했다.
에리카. 아리. 이름 없는 여자들.
마약을 강제로 투약한 밤들. 무의미한 섹스. 욕망에 미쳐 사람을 지우던 날들.
그가 저지른 죄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려줘.”
소원은 발동됐다.
그날 이후, 세계는 달라졌다.
서인이란 이름은 잊혔다. ‘라이즈웍스’라는 회사는 없었다. 윙카도, 기사도, 걸그룹과의 추문도 모두 사라졌다.
그는 다시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예전의 완벽한 외모는 사라졌고,
늘어진 피부와 굽은 어깨, 무표정한 눈빛이 그를 비췄다.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그 얼굴을 보고 안도했다.
“돌아왔구나.”
모든 것을 가진 괴물이 아니라,
이제 그는 아무것도 없는 ‘한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고,
작은 창고에서 프로토타입을 조립했다.
윙카는 없었지만, 작고 빠른 전기 바이크를 만들어냈다.
그 기술을 기반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그 이름도 과거와 똑같이 ‘라이즈웍스’였다.
이전과는 달랐다.
그는 더디고 서툴렀지만, 자신의 손으로 회사를 키워냈다.
그의 손은 다시 기술을 익혔고,
그의 눈은 다시 사람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사교 모임에서였다.
그는 초대를 받고도 망설이다 참석했다.
조용히 벽 쪽에 앉아 있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누구야?”
서인은 고개를 돌렸다.
에리카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여전히 20대 때의 생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피부는 맑았고,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마약도 하지 않았고, 오직 연예계 활동에만 몰두해 살아온 얼굴이었다.
그는 그녀를 보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 눌러왔던 죄책감이, 그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놀란 듯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그녀는 말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시 그렇게 있었다.
서인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신이 겪었던 지난날의 기이한 일들—소원을 얻은 순간부터,
쾌락과 공허, 아리의 죽음, 감옥, 그리고 마지막 소원까지.
에리카는 처음엔 멍하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서인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때... 그 이상한 기분들, 내가 이유 없이 무너졌던 감정들...
지금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기억들은 분명 너의 이야기인데,
내 안에서 너무 생생하게 되살아났어.
잊은 줄 알았던 밤의 감정, 불안하게 떨리던 마음,
그 모든 게 마치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확실한 건… 그 감정들 안에 내가 있었다는 거야.
네가 나를 이용했다는 사실보다 더 선명하게,
나는 그때… 너를 정말 사랑했어."


그 말은 서인의 가슴 깊은 곳에 닿았다.
무너졌던 감정의 뿌리가 다시 피어나는 듯한 기분.
오랜 시간, 억눌려 있던 눈물이 다시 그의 눈가를 적셨다.
에리카는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서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그는 다시 누군가의 손을 따뜻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소원을 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소원도 이 순간보다 소중하지 않았다.
서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그는 진짜 감정을 되찾은 인간이 되었다.
그날 밤, 그는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마치 소원을 빌 듯.
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손을 조용히 내렸다.
여전히 그는 소원을 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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