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자의 세상

by 서인


그의 침대는 여전히 넓었다. 시트는 비싼 향수 냄새로 가득했고, 조명은 붉은 색으로 낮게 깔려 있었다. 매일 다른 여자가 그 침대에 누웠다. 처음엔 유명 걸그룹의 메인 보컬이었다. 다음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모델,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하룻밤 인플루언서들.

섹스는 처음엔 도파민을 밀어올렸다. 몸이 닿을 때마다 짧은 숨과 뜨거운 체온이 감각을 자극했지만, 그건 점점 마모되었다. 서인은 알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육체가 아니라 감정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 감정은 죽은 지 오래였다.

“너무 조용한 밤이에요, 대표님.”

“말하지 마. 그냥 하자.”

그녀들은 웃었고, 그는 웃지 않았다. 섹스는 이제 행위였다. 의식이었고, 그 의식은 매번 끝이 없었다. 만족은 오지 않았다.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 단계를 선택했다.

인간과 똑같은 외형과 감각, 체온까지 구현된 고급형 AI 성 인형.

그녀들은 결코 피하지 않았다. 언제나 서인의 욕망을 온몸으로 수용했고, 그 어떤 항의도,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처음 그는 그것이 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잔혹한 착각이었는지는 곧 알게 됐다.

감정이 없는 존재에게, 그는 감정을 증명할 수도 없었다.

“넌 날 사랑하니?”

“네. 입력된 감정 기준에 따라, 당신은 가장 우선순위입니다.”

그 대답이, 오히려 그의 내면을 망가뜨렸다.

그는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하루에 한 명으로는 부족했다.
아침, 점심, 저녁. 침대에서, 샤워실에서, 심지어 회의실에서.
쾌락은 더 이상 은밀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일과표 일부였다.

그리고 마약.

그는 처음 그것을 ‘감정 회복용 약물’이라 불렀다.
처방받은 알약에서 시작된 그것은 곧 가루로, 주사기로, 그의 혈관을 지배했다.

“잠깐이라도 느끼고 싶었어.”

그가 자신에게 던진 독백이었다. 하지만 그 약은 감정을 주는 대신, 그의 뇌를 말려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가장 신뢰하던 여배우가,
그의 침대에서 울면서 말했다.

“당신, 지금… 나를 때린 거 알아?”

서인은 눈을 깜빡였다. 기억이 없었다.
그의 손은 붉었고, 그녀의 뺨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에리카는 그가 처음으로 만난 유명인이었다.
자주 만남이 이어졌고, 서인은 그녀의 감정을 이용했다.
그녀가 그의 방에 올 때마다, 그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녀와 섹스를 했고,
가끔은 마약을 권하거나 몰래 주사했다.
그녀는 점점 그의 품 안에서 무너져갔다.

그리고 어느 날, 에리카가 찾아왔다.
그날은 평소보다 무척 조용했다.
서인이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임신했어요. 당신 아이예요..”

침묵. 서인은 숨조차 쉬지 않았다.
몇 초 후, 그는 평소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워. 내 사람이 연락할 거야.”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에리카는 침묵하지 않았다.

며칠 후, SNS 라이브 방송에서 그녀는 울면서 폭로했다.

> “저는 서인에게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했고…
성관계를 강요받았어요. 그리고… 지금, 임신 중입니다.”



인터넷은 폭발했다.
서인의 이름은 하루 만에 전 세계 1위 검색어에 올랐고,
그의 회사는 곧 주식 거래 정지와 함께 수사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서인은 그 사태를 ‘덮는’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처음엔 통했다.
몇몇 기사는 삭제되었고, 에리카의 SNS 계정도 일시적으로 접근이 차단됐다.
한동안은 그가 원하던 대로, 다시 조용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었던 수십 명의 여성들, 비서, 엔지니어, 파티 참석자들, 모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씩, 아니, 두 개씩.
폭로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는 다시 소원을 빌었다.

“이번 것도 덮어줘.”

그리고 또.

“이번 한 번만 더.”

그는 마치 도박 중독자처럼, 소원을 소비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원을 이룬다는 감각 자체가 무뎌졌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데도, 전율도, 쾌감도, 만족도 없었다.

‘이제… 왜 비는 거지?’

그는 점점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원을 빈다는 것조차 지겨워졌다.

폭로는 계속됐고,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회사 서버는 .그의 이메일, CCTV, 통화기록, 그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공개되었다.

수백 개의 고소장이 접수되었고,
그의 집엔 압수수색과 함께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리고 그는 구속되었다.
수갑을 찬 채,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소원은 이제 필요 없어.”

그가 유일하게 중얼거린 한마디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신이 아니었다. 감정을 버리고 쾌락을 택한 인간. 그 끝은 신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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