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착취: 공감은 상품이 되었는가

by 서인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는 말은 이제 진심이 아니라 전략이 되었다.
인플루언서의 댓글, 상담사의 멘트, 혹은 AI의 대답까지. 우리는 ‘공감받는 감정’을 찾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감정은 더 이상 교류가 아니라 구매 대상이다.

“요즘 사람들은 전부 T 같아.”
이 말은 단순한 성격 유형의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감정의 무력화’를 설명하는 상징이다. 피곤하고 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감정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듣는 것 자체가 피로하고, 공감은 곧 감정노동이다. 그러니 차라리 공감하지 않기로 한다. 이 흐름이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가 된 시대, 감정은 점점 ‘서비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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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외주화: 감정을 들어주는 서비스들
한때 공감은 관계 속에서 당연히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문상담소, 감정노동자, 혹은 AI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에게 감정을 기대하지 않고, 앱이나 챗봇, 심리상담 플랫폼에 가입한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나, 서인은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판단하지 않으며, 되묻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가 사람이 아니어도, 어느 순간부터 안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감정은 ‘공감’이라기보다 ‘단절 없는 독백’에 가까웠다. 상대가 나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투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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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T가 되어가는가?
공감을 생략하면 확실히 덜 피곤하다. 문제 해결 중심으로 사고하고, 효율과 거리 두기로 일관하는 것.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다치지 않고, 쉽게 피로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흐름은 우리를 결국 감정 없는 소비자로 만든다. 누군가의 슬픔에 손을 얹기보다는 “그건 네 일이야”라고 지나치게 되고,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시간 낭비"로 여기는 시대.

정말 피로한 건, 공감 그 자체가 아니라
‘공감해 주는 척해야 하는’ 이 시대의 피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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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를 시로 표현해 보자면,

슬픔을 나누면
슬픔은 더 깊어지고

기쁨을 나누면
기쁨은 퍼져가지만

감정의 값은
결코 싸지 않다.

귀를 막은 세상엔
들어줄 이조차 없기에.



– 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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