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지루함에서 태어난 악마

by 서인

이청백은 언제나 모범생이었다. 상위권 성적, 조용한 성격, 다정한 말투. 유년 시절부터 그는 '착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 말은 축복이자 족쇄였다. 누구도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그 또한 감정을 어지럽히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법을, 너무 빨리 배워버렸다.


성인이 된 그는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는 세상을 설계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코드를 짜며 밤을 지새웠다. 창업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딥러닝과 AI, 인간 행동 예측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만든 그의 스타트업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회자되었다. 몇몇은 그를 '미래를 코딩하는 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성공의 첫 해가 지나고, 그는 자신이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틴은 정확했고, 수익은 안정적이었으며, 그는 어느새 회의와 보고서, 발표와 피칭 사이에서 '창의성' 대신 '유지'라는 단어에 갇히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심심했다. 돈도, 인정도, 일도.


그러던 어느 날, 이청백은 오래된 파일 하나를 꺼냈다. 딥페이크.


그것은 학부 시절, 재미로 만들다 포기한 코드였다. 자연스럽게 얼굴을 바꾸는 기술. 원리는 간단했다. 수많은 얼굴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특정 인물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적용시키는 것.


“한 번만 돌려볼까.”


그는 영상을 하나 선택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누가 봐도 성인물이었다. 대상 얼굴은 유명 여배우. 그녀의 이미지 데이터를 긁어모으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렌더링. 결과는 완벽했다.


이청백은 놀라지 않았다. 기술은 예상대로였다. 다만, 그의 심장은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만 봤다. 밤마다 그 영상들을 반복 재생했다. 실험처럼, 혹은 자위처럼.


그는 처음엔 이걸 '예술'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상품'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익명 계정으로, 영상 몇 개를 업로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거 진짜야?


와, 미쳤다. 돈 보내줄 테니까 다음 거 좀.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지갑은 어느새 무겁게 불어났다. 그때부터 이청백은 영상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제 단순한 취미가 아닌 시스템이었다. 데이터 수집, 자동 렌더링, 디지털 지갑 연동.


“좀 더 자극적인 게 필요해.”


그는 유명 정치인의 아내, 인기 아이돌, 심지어 고등학생의 얼굴까지 입혔다. 때론 피해자의 지인에게 영상을 보내 협박했고, 어떤 이는 그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웃었다.


“애초에 당신이 조심했어야지.”


그의 말은 독처럼 스며들었고, 죄책감은 증발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그에게 연락해 왔다. 익명 계정을 추적해 그의 개인 메일 주소를 알아낸 듯했다. 그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그 위엔 딥페이크 영상의 캡처 이미지와 함께 날짜, 계좌, 유출 경로가 정리돼 있었다.


"이거... 당신이 만든 거 맞죠? 삭제해 주세요. 제발요. 전 그냥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에요."


이청백은 그녀를 천천히 바라봤다. 무너진 눈빛. 자존감이라고는 한 조각도 남지 않은 얼굴.


"삭제해 드릴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조건이 있어요."


그녀는 눈을 떴다. "뭐든지요. 말만 하세요."


그는 고개를 비틀며 웃었다. "호텔 방, 예약돼 있어요. 지금, 같이 가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에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옷을 벗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그녀를 내려다봤다.


"당신은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말이죠."


"… 하라고 했잖아요. 하라고만... 제발, 끝나고 지워주세요."


그는 카메라를 꺼내 들며 말했다. "아뇨, 이건 새로운 거래예요. 당신은 이제 내 시스템 안에 있어요."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짜릿했다. 타인의 존엄을 발밑에 두는 이 감각.


그 순간, 그는 신이 된 기분이었다.


그의 눈 뒤에서, 창문 밖으로 검은 형체가 움직였다. 아직은 흐릿하고 작았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박수를 치는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뚜렷하게.


그리고, 그의 내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검은 그림자였다. 처음엔 창밖 그림자 같았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기척은 없지만 기분만은 선명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화면을 봤다.


그림자는 사라져 있었다.


이청백은 그날 밤 처음으로 악몽을 꿨다. 모자이크도 없는 얼굴들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울었고, 어떤 이는 웃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욕실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기술을 만든 것뿐이야.”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 뒤에 무언가가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계속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는 웃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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