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자, 혹시… 이청백 씨 아니에요?"
호텔 루프탑에서 열린 사교 모임. 진한 위스키 향과 재즈, 반짝이는 드레스 사이에서 이청백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술잔을 흔들며, 음악을 듣는 듯 아닌 듯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몇몇은 그를 알아봤다.
"그 AI 회사 대표. 얼굴 바꾸는 기술 만든 사람 맞죠?" "그거 포르노랑 연결돼 있다던데." "아냐, 그냥 루머야. 천재들이 하는 일은 늘 의심받잖아."
그 말은 맞기도, 틀리기도 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눈빛은 건조했다. 이제는 어떤 자극에도 쉽게 미동하지 않는 인간이 된 듯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은빛 넥타이에 어울리지 않게 거칠고 헝클어진 머리. 그러나 그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품위가 있었다.
"이청백 씨 맞죠?"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음이 숨어 있었다.
"누구십니까?"
"임지환입니다."
둘은 악수했다. 짧고 단단한 악수.
"당신에 대해 흥미롭게 보고 있었어요. 딥페이크라는 단어, 요즘엔 너무 쉽게 소비되잖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걸 예술로 만들었더군요."
이청백은 웃지도 않았다. "그건 단순한 기술입니다."
"아뇨, 그건 권력이죠. 착각하지 마세요. 세상은 가짜를 진짜보다 더 좋아합니다. 그걸 아는 자만이, 진짜가 되죠."
그 말에, 이청백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임지환은 천천히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이건…?"
"한 번 해봐요. 잠깐이면 돼요. 뇌가 깨어나는 느낌. 일상이 무너지는 쾌락. 당신 같은 사람에겐 잘 어울릴 거예요."
그는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손은 이미 봉투를 열고 있었다. 흰 가루.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날 밤, 그는 루프탑에서 내려와 호텔 방에 홀로 앉아 처음으로 마약을 흡입했다. 첫 느낌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분쯤 지나자,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악은 더 선명했고, 몸은 가벼웠다. 감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그는 임지환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그거. 다시 구할 수 있습니까?
며칠 후, 그들은 다시 만났다.
"원하는 만큼 드릴 수 있죠. 대신… 우리 쪽 시스템이 조금 구식이라서. 데이터 정리나 물류 통제 쪽에 당신 재능을 좀 빌리고 싶네요."
이청백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거절하는 게 더 피곤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고, 며칠 만에 마약 유통용 앱과 대포 계좌 추적 방지용 암호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임지환은 그에게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봐요.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깨끗한 사람은 아무것도 못 만들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판을 깔아주는 거지."
이청백은 웃었다. 아니, 웃은 듯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공허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림자가 말했다.
"더 해. 네가 만든 시스템은 아직 멀었어."
이청백은 혼잣말을 했다. "너… 누구지?"
"나? 네 안에 있는 것. 네가 만든 세계의 부작용."
그의 손이 떨렸다. 마약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며칠 후, 이청백은 한 여자의 영상 파일을 업로드한 뒤, 스스로 그 가족에게 전송하는 코드를 짰다. 그들은 울부짖었고, 무릎 꿇었고, 계좌를 열었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그걸 지켜봤다.
"난 기술을 쓴 것뿐이야. 감정은… 시스템이 아니지."
그의 말과 함께, 그림자는 창밖 난간에 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보였다. 어깨너머로 속삭였다.
"너는 이제 인간이 아니야."
그때부터, 그림자의 목소리는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청백은, 더는 선을 의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