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이나 아무 말이나

by 시칠리아노

커피를 석 잔째 마시고 있습니다. 연하게 마시고 있으니 밤잠을 방해하지는 않을 거예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노트북을 연 것은 아닙니다. 님이 생각나는데 그것이 싫지 않아서 아니 좀 달콤해서 글을 쓰면서 더 생각하려고 앉았어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오늘 새벽 님이 쓰셨던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무거운 내용을 무겁지 않게 쓰셔서 더 깊이 와서 닿더군요. 글의 가장 큰 장점은 걸림없이 술술 읽힌다는 것입니다. 님이 말씀하셨던 필리프 베송의 글처럼요. 물론 차이도 있습니다. 베송은 문장이 건조하고 짧으며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데 님은 길고 친절합니다. 그런데 문장의 낭비가 없고 깔끔해요.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지요. 님처럼 글도 따뜻하고 친절하고 유머러스합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JM 향수를 말할까요? 상큼함이 봄과 여름에 어울리는 향이라 님께서 이제 더욱 자주 사용하시겠군요. 허공을 향해 향수를 가볍게 뿌렸습니다. 순식간에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는군요.


음악이 바뀌었어요. 키신이 연주하는 쇼팽 왈츠 7번으로요. 슬픔이 유려하게 직조되어 비단처럼 펼쳐진 곡이죠. 키신이 음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서 슬픔은 더 밀도 높게 직조되고 멜로디는 더 부드럽게 펼쳐졌네요.


향수는 봄인데 음악은 가을을 닮아 잘 어울리지 않는군요. 지금 봄이니 음악을 바꾸어야 할까요? 그냥 듣겠습니다. 어울리지 않으면 어떤가요? 각자 좋은 걸요.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이나 아무 말이나 하고 있어요. 그래도 싫지 않으시죠? 시시한 것에 더 끌리고 아름다운 것들에 필연적으로 깃들어 있는 슬픔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종족. 종족은 종족을 알아 본답니다.


또 시시한 것들을 들고 찾아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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