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침이면 늘 커피를 내린다. 남편이 내린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보온병을 배낭의 옆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헤드폰을 쓰고 바흐 피아노협주곡 5번을 튼다. 배낭을 메고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출근을 한다. 아주 천천히 걸으면 집에서 교무실까지 10분쯤 걸린다.
나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주인의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몸 덕분에 술도 담배도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다. 술은 마시자마자 온몸을 벌겋게 달군 뒤, 잠시 후 위와 장의 모든 것을 목도하게 만든다. 담배는 피우면 몹시 어지러워 잠깐 사이 기력을 다 뺏어 간다. 카페인에도 민감하여 많이 마시면 밤잠을 못 자는 것은 물론이고 수전증까지 생긴다. 그런데도 커피의 향은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연하게 하루 종일 마시고 있다.
원두를 사 먹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다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원두 가게를 찾아갔다. 그 집의 커피를 내렸는데 풍취가 남달랐다. 교무실의 내 자리 주변으로 하루 종일 커피향이 끊이지 않았다. 교무실을 나갔다 돌아오면 커피의 향이 더욱 그윽했다. 좋은 커피를 만나면 좋은 친구를 만난 듯 행복하다.
공간을 변화시키는 마법, 음악과 향이다.
그것들이 있는 까닭에 오늘도 돈을 벌기 위한 출근이 생존 투쟁이 아닌 향기로운 여유일 수 있다.
퇴근 무렵 벚꽃이 곱게 핀 것을 보았다. 눈송이처럼 작은 꽃의 잎사귀가 모두 다소곳이 벌어져 있었다. 잠시 서서 꽃송이를 바라보았다. 이 짧은 시간이 지나고 흐드러지면 곧 떨어지겠지. 떨어져서도 늘 그랬듯이 눈처럼 고울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과 꽃과 온기가 고맙다. 봄꽃과의 만남이 내 삶에 스물다섯 번쯤 남았을 것이다. 삶도 꽃처럼 짧다.
나의 삶도 꽃처럼 떨어지고 남은 이들에게 눈처럼 곱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