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공백 속에서

주절거림

by 구름

퇴근하는 길, 매번 활자에 지친 눈을 가만히 내리감고는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피로감에 흠뻑 젖은 두 눈과 두 귀에 고요를 선사하기 위해 그저 연결되지 않은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잠시간은 그 상태를 유지하다 슬며시 눈을 뜨고는 여러 소음들이 차단된 조용한 소리의 공백 속에서 사람들의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입술을 바라본다. 여러 모양의 입술들이 여기저기서 움직이기 바쁘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무심히 시선을 아래로 툭 던진다. 그럼 내 눈에는 각양각색의 신발코가 보인다. 해져서 너덜거리는 운동화의 앞코, 반짝반짝 윤을 내는 구두의 앞코.


반짝거리는 구두의 앞코를 가진 남자는 금방 그곳을 떠나버린다. 그가 내린 자리에는 금방 또 다른 깔끔하게 정돈된 목덜미를 가진 남자가 차지한다. 그 남자의 희고 깨끗한 목덜미를 잠시간 내려다보다 그 옆에 덥수룩하게 머리가 덮인 다른 남자의 목덜미를 멍하니 바라본다. 시선을 위로 들어 올리면 시끄러운 지하철 속에서 홀로 집중을 한 채 책을 읽어 내려가는 여자를 마주할 수 있다. 그럼 난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몰래 힐끔거리며 그녀의 시선에 따라 나도 조심스레 그녀와 같은 속도로 글자들을 읽어 내린다. 그 책을 읽고 있는 여자의 옆에는 서로를 마주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있다. 그들의 서로를 향한 따스한 눈빛에 '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눈빛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조심스레 깨닫게 된다. 그것에 ‘한 때의 나 또한 저런 눈빛을 가졌던 것일까‘ 하는 혼자만의 궁금증이 생겨난다.


가만히 서서 그 투명한 소리가 없는 풍경들을 시선의 흐름에 따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점차 지쳐있던 나의 정신과 육체가 어느샌가 회복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매일 퇴근과 함께 내 세상이 채워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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