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은 기다림의 색이다

by 김기수

푸르름은 기다림의 색이다


– 시 겸 에세이


푸르름은 쉽게 타지 않는다.

꽃이 피고 지는 시간 속에서도,

나무는 말없이 초록을 품는다.

한 계절을 견디며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것.

그건 어쩌면 푸르름의 가장 깊은 본성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그런 나무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초록.

비에 젖은 이파리,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의 무늬들.


푸르름은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말 대신

‘그럼에도 괜찮아질 거야’를 속삭이는 색이다.

아직 미완의 마음들, 다 다물지 못한 상처들 위로

천천히 감싸 안듯 내려앉는 초록빛.

그건 위로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스스로 피어나기까지, 누군가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


우리는 왜 푸르름을 필요로 할까.

아마도 너무 많은 것들이 불타고, 지나치게 빨리 자라고,

모든 것이 끝내기를 종용하는 세상 속에서,

아직 피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푸르름은 유예의 시간이다.

무언가를 서둘러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충분히 머물 수 있는 마음의 쉼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색이 필요하다.

조금은 불완전한 존재끼리,

서로를 무르익게 하는 시간.


푸르름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여백이다.

세상의 붉음에 지친 하루 끝에서

우리는 조용히 푸르름을 찾는다.

그 푸르름 안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 하나를 배운다.


그러니, 잊지 말자.

푸르름은,

결코 단순한 색이 아니다.

그건

기다림의 온도이고,

회복의 시간이며,

사람이 사람을 놓지 않기 위해

끝내 품어야 할 마음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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