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과 물듦, 그 사이의 아름다움 –
푸르름이 세상을 덮을 때, 우리는 시작을 떠올린다.
봄날 연둣빛 잎사귀처럼 설레는 마음, 여름날 숲을 가득 채운 녹음처럼 단단히 자란 내면.
그 푸름은 생명이고, 진행이고, 아직 멈추지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잎들이 노랑으로 물든다.
계절은 여전히 흐르고 있지만, 그 안엔 ‘멈춤’의 기미가 보인다.
햇살이 덜어낸 푸름의 무게만큼, 잎사귀는 조금씩 물러서고 단풍이 시작된다.
노랑은 그래서 슬프고도 따뜻하다.
어쩌면 노랑은 푸르름이 겪은 시간의 흔적이다.
녹음이 다녀간 자리, 바람이 묻히고 햇살이 오래 머문 자리에 남겨진 빛.
그 색은 아무도 서두르지 않은 기다림 끝에 나타난다.
그리고 말없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모든 순간은 지나가고, 그 지나간 자리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푸르름과 단풍이 공존하는 풍경은 묘하게 평화롭다.
아직 녹음이 머문 나뭇가지 사이로 노랑이 번지고,
붉은 잎은 어느새 그 틈에서 고요하게 흔들린다.
자연은 그렇게 어떤 순간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색을 품는다.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다.
늘 한 가지 빛깔로 살아갈 수는 없다.
기다림의 계절이 지나가면, 견뎌낸 마음은 흔적을 남긴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애틋함이라는 감정으로.
푸르름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에
노랑은 서럽지 않다.
단풍은 그저, ‘이만큼 살아냈다’는 표식일 뿐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 안의 푸름과 단풍과 노랑이 어우러진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지금의 우리는
계절처럼 자연스럽고, 색처럼 아름답다.
– 시
푸르름이 머문 숲은
언제나 시작처럼 빛났다
햇살을 밀어 올리던 잎사귀
바람에 설레던 여름의 몸짓
그 푸름이 물러서고
노랑이 스며드는 날엔
세상은 조금 느려지고
시간은 제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단풍이 붉어질 무렵
나는 알았다
모든 색은 사라지지 않고
겹겹이 마음에 남는다는 걸
푸르름은 다짐이고
노랑은 기다림이며
단풍은 조용한 이별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푸르름과 단풍, 노랑이 함께 있는 날
나는 삶이 온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믿었다
지나간 계절들까지
품을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