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스스로에게 부족하다는 판정을 내립니다.
조금 더 성실했어야 했다고,
조금 더 참았어야 했다고,
조금 덜 흔들렸어야 했다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지금의 나’와 ‘되어야 할 나’를 나란히 세워두고
끝없이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날,
현재의 나는 늘 패배합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우리는
기준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성적표의 숫자,
평가의 문장,
사회가 정해둔 속도와 방향.
잘하는 사람은 박수를 받고,
느린 사람은 설명해야 했습니다.
버티는 사람은 칭찬받지 못했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만이 성숙하다고 불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은근히 배웠습니다.
‘지금의 나’는
언제나 수정 중이어야 한다는 것을.
문제는 그 기준이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데 있습니다.
기준은 늘 평균을 말하지만,
인간은 결코 평균으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가 있고,
각자의 상처가 있고,
각자의 계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속도를 맞추라고 말합니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효율적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그 말들 사이에서
우리는 조용히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그 질문은
처음에는 반성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존재 전체를 향한 비난이 됩니다.
실패한 일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이미 우리는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하루를 견디고 있고,
지금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고,
지금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애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시간을 무가치하게 여깁니다.
어쩌면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정말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세지 않는 습관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완성된 사람만이
존재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믿는 태도.
하지만 삶은
완성된 사람에게만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진행 중인 채로
사랑하고, 일하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섭니다.
완성이 아니라
진행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인가,
아니면 아직 과정에 있는 사람인가.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꿉니다.
지금의 나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조금만 멈춰 서서 묻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미 살아내고 있는 중이 아닌가.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충분하지 않은가.
줄리앙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결핍 덕분에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결핍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결핍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은 존재로 이끄는 통로일지도 모릅니다.
완전해져야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면.
지금의 나는 미완성이라서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과정이기에 움직이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은 결함이 아니라 여백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여백 덕분에 우리는 타인과 이어지고,
조금 더 인간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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