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밸런스의 노래
문득, 도나가 들려왔다
카페 한켠, 오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건
리치 발렌스의 Donna였다.
“오, 도나… 오, 도나…”
그 반복되는 가사에
무심코 들고 있던 커피잔이 멈췄다.
그냥 지나쳤으면 좋았을 멜로디인데,
왜 그 노래는
그날따라 그렇게도 선명했을까.
도나는, 내게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잊지 못한 어떤 감정의 이름,
내가 놓치고,
그래서 더 간절했던 사랑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리치 발렌스는 겨우 열일곱이었다지.
그 어린 나이에
그토록 애절한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었다는 게
처음엔 그저 놀라웠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사랑은 나이로 설명되지 않으니까.
그 시절의 감정은,
누구보다 깊고,
누구보다 치열해서
평생을 두고도 잊히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기억조차 흐려진 어떤 계절,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가슴속 어딘가에 늘 남아 있다.
처음엔 모든 게 서툴렀다.
어디까지가 좋아하는 마음인지,
어디서부터 사랑인 건지
우린 서로에게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더 진심이었다.
짧은 통화,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수화기를 쥐고 있던 그 밤.
비 오는 날 약속 없이 찾아와
같이 걷던 젖은 거리.
작은 떨림조차 전해지던 손끝.
그땐 몰랐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사랑이란 게
지금처럼 당연하지도,
계산되지도 않았던 그 시절.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너무도 쉽게 사람을 멀게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 속에서
점점 사라졌고,
마지막 인사도 없이
기억 속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랑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잊은 줄 알았던 마음이
문득 듣게 된 한 곡의 노래에
이토록 선명하게 깨어나는 걸 보면.
그 노래를 들을 때면
나는 늘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의 말투,
그 눈빛,
그리고 내가 하지 못했던 마지막 말.
“미안해.”
“사랑했어.”
“지금도, 가끔은 그리워해.”
리치 발렌스의 도나가
누군가의 이름을 간직한 노래라면,
내 마음속에도
이름 없는 ‘도나’가 하나쯤은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사랑을 품고 살아간다.
지금은 곁에 없어도,
마음 어딘가
영원히 울리는 그 이름 하나.
사람이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데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서로의 대화가 자꾸 어긋났고,
함께 있는 시간이
어느새 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걸.
어느 날, 그 사람이 말했다.
“괜찮아, 나 먼저 갈게.”
그 말이 그렇게 아픈 작별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잡지 않았고,
그 사람도 돌아보지 않았다.
둘 다 그게 마지막이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한 채,
그저 한 계절을
조용히 접듯 그렇게
우린 등을 돌렸다.
이별은 울음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에
이미 다 담겨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묻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혹시 너무 지쳤던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밤이면 그런 생각들이
숱하게 밀려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람의 말 없는 배려가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됐다.
끝까지 상처 주지 않으려
차가운 사람인 척했던 모습도.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보다
헤어진 하루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순간의 공기가,
그 사람의 뒷모습이
너무도 선명해서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문득,
누군가의 뒷모습을 볼 때면
그 사람이 떠나던 날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날의 공기는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작은 숨결로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날의 이별을
조용히 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