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건네준 아버지의 사랑
추수가 끝나면 마당 한쪽에 볏단을 높이 쌓아 큰 비닐로 덮어두었다.
겨울이 되면 아버지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짚뭇을 가져다 새끼를 꼬아 망태를 만드셨고,
가끔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돗자리 멍석을 엮어 내셨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아버지는 손재주가 참 좋으셨다.
나의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아버지가 만든 대나무 갈퀴다.
우리 집 뒤안에는 지금도 작은 대나무 밭이 남아 있다.
그때 아버지는 얇은 대나무로는 마당을 쓸 빗자루를 만드셨고
두꺼운 대나무는 낫으로 쪼개어 갈퀴를 만드셨다.
촛불 위로 생대나무 조각을 가져다 대면
치익— 소리와 함께 매캐하면서도
그을린 대나무 타는 냄새가 방 안을 덮었다.
아버지는 촛불에 대나무를 달궈
손으로 꾹- 눌러 정성스레 모양을 잡으셨다
그렇게 나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갈퀴를 완성해 주셨다.
다른 친구들은
묵직한 쇠갈퀴를 들고 다녔지만,
내 손엔 늘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대나무 갈퀴가 있었다.
사실 갈퀴 그 자체보다도,
막내딸에 맞춰
손잡이를 매끄럽게 다듬어 주시던
그 정성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나에게도 언니들이 있었지만,
함께 나무하러 다닌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 빈자리를 채워준 건 깨복쟁이 친구 영미였다.
꽃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면
영미는 내 손에 들린 노르스름한 대나무 갈퀴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경아, 우리 갈퀴 좀 바꿔서 하자.
대신 우리 나무 좀 나눠줄게.”
영미는 우리 아버지의 갈퀴가 부러웠던 것이다.
쇠갈퀴가 차갑고 무겁게 땅을 긁어갈 때,
대나무 갈퀴는 가볍고 부드럽게 나무를 모았다.
어쩌면 나도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영미는 늘 동생과 함께 나보다 더 많은 나무를 했으니까.
“그래, 그러자.”
그렇게 나무를 할 때면
아버지의 갈퀴는 영미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쌓여 갈 때,
우리는 바닥에 소나무 가지를 깔고,
마른 솔잎을 다시 덮어 세 겹으로 둥지를 만들었다.
어느새 그 둥지는
내 머리 위에 얹어져 집으로 향했다.
“얘들아, 나도 이만큼이나 모았어.”
“우와, 대단한데! 우리 것과 비슷하네!"
두 자매가 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었지만
친구들의 칭찬 속에 기분 좋게 웃으며,
집에 돌아와 마루 밑 녹항에
솔나무를 조심스레 채워 넣었다.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갈퀴는
나에겐 근사한 추억이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조금씩 풍성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