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저장하던 부엌
가을이면 우리는 겨울을 저장했다.
밭에서 캔 고구마를 절단기로 얇게 썰어 말리고,
남은 고구마는 마루 밑 목항에 채워 넣었다.
땅굴처럼 깊게 파인 공간에 쌀겨를 덮고
각가지 수확을 끝낸 작물 더미를 올려두면
겨울 내내 든든한 저장 창고가 되었다.
저녁 무렵, 가마솥에 밥이 익어가고,
밥냄새와 불냄새가 어우러져 뱃속에 허기를 더해 주었다.
오빠가 장작불에 고구마를 올리면
참깨 나무 터지는 소리와 고구마 익어가는 소리.
작은 손으로 뜨거운 고구마를 집어 들고
호호 불며 한입 물고,
부뚜막에선 고구마 하나가 까맣게 타도 그마저도 달콤했다.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지?”
숯덩이가 되어 말하는 언니의 한마디는
우리를 작은 행복으로 이끌었다
고구마 하나를 나누는 일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으니까.
엄마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원래는 쌀로 술을 만들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쌀 대신 고구마로 막거리를 빚었다.
큰 솥에 물을 붓고
껍질째 고구마를 푹 삶아 식혀서
“쾅— 쾅—”찧어
고구마가 부드럽게 풀리면
누룩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반죽을 했다.
두꺼운 헝겊으로 한 겹, 두 겹 덮어 온도를 지켰다.
며칠이 지나고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면
노란 고구마 술이 완성된다.
그러다 겨울이 깊어갈 무렵이면
마을에는 늘 같은 소문이 돌았다.
“이번 주에 산감이 돈다더라.”
그 말이 퍼지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지고 긴장으로 가득하다
산감은
산림 보호와 불법 양조를 단속하던 사람이었다.
집에서 빚어 둔 고구마술과
산에서 벤 땔감용 소나무는
‘범죄의 증거’인 셈이다
며칠 뒤,
두툼한 군복에
회색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들어섰다.
“농사짓는 집이 솔나무는 왜 이리 많아?”
부뚜막 옆, 참깨대를 쌓아 둔 더 깊은 곳에
소나무 땔감 몇 토막이 숨어 있었다.
“밭에서 수확한 참깨예요 겨울 땔감이요.”
그는 엄마의 대답 대신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른 뒤
마루 밑을 마지막으로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이번엔 넘어가지만,
다음엔 봐주기 어렵소.”
산감은 알고 있었을까?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이 되면
쟁기질하는 아버지를 위해 고구마 술을 새참으로 가져간다
그때 노란 주전자에 남은 술은
몰래 먹어서 그런지 너무 달콤했다.
아직도 잊지 못할
고향의 맛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