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버틴 겨울
겨울이면 방학이 없었으면 생각할때도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바람은 유난히 매서웠고,
하늘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마을 전체를 더 작고 조용하게 만들었다.
우리 마을은 가을의 수확를 마치고도
겨울의 일꺼리가 또 있었다
그 계절만 되면 엄마는 어김없이 감태를 매러 바다로 향하셨다.
뻘밭에 붙은 감태를 걷어 시장에 내다 팔며
한 해의 가장 추운 날들을 견디셨다.
밤이면 아버지는 작년에 적어둔 농사일지를 펼쳐보고,
엄마는 다음 날의 날씨와 바람을 걱정하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그림자처럼
감태를 씻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감태는 얇고 가벼웠지만,
그걸 다루는 일은 차갑고 고단했다.
겨울 바람은 살을 파고 들었고,
물속에 손을 넣으면 몇 초 만에 감각이 사라졌다.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바다의 얼음을 깨고
그 아래 차가운 뻘속에서 감태를 들어 올렸다.
“추워도 해야제.”
엄마는 당연히 하는 일로 생각하고 계셨다
나는 어린 손에 장갑이 맞지 않아 결국 맨손으로 감태를 잡았다.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에 튀면 깜짝 놀라면서도,
엄마의 갈라진 손등을 보면 울음이 도로 삼켜졌다.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감태가 잔뜩 담긴 대야를 허리에 끈으로 묶고
뻘을 헤치며 바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무게는 물기보다, 바람보다,
생계를 지켜야 하는 마음 때문에 더 무거웠다.
작업이 끝날 무렵이면 아버지가 니어커를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빗길을,
눈 오는 날이면 미끄러운 눈길을,
날이 맑으면 먼지를 일으키며
늘 같은 길을 지나 저수지로 향했다.
저수지의 얕은 물가에서
감태를 씻고,
또 밟고, 다시 헹궜다.
세 번 정도 반복해야 모래와 뻘이 빠졌다.
나는 물속에 손을 넣을 때마다 감각이 사라져
손이 내 손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니어커를 끄느라 손이 곧장 얼었고,
엄마의 손은 어느새 바다의 소금기를 머금은 할머니의 손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저수지에서 돌아오면 일이 끝난 줄 알았지만,
그건 절반이었다.
집에 도착한 순간 엄마는 다시 큰 대야에 감태를 밟고 샘물을 길어올렸다.
줄에 매달린 엄마의 두루박은 가득 이었지만
나의 두루박은 언제나 물이 반뿐이었다
고무 대야 속에서 감태를 흔드는 소리,
찬물이 튀는 소리,
엄마의 숨소리가 집안 전체에 고요하게 섞였다.
물 위로 감태의 향이 참기름처럼 퍼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끝이 보이지만,
엄마는 마지막 과정으로 쇠그릇을 꺼내 감태를 훑은다.
‘챙— 챙—’
쇠가 울리는 소리는 곧 모래가 섞여 있다는 신호였다.
소리가 조금이라도 쇠면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당아 멀었네 한 번 더 씻거야 겄어.”
그 목소리에는 하루의 피로와 꼭 해야만 한다는 의지가 들어 있었다 .
그래야 단골 손님이 생길테니까.
깨끗하게 씻은 감태는
겨울 볕 아래 말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감태는 시장에서 팔았다 .
겨울의 바람보다 날카로운 생계의 현실이 엄마를 하루도 쉬게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 옆에서 물을 나르고,
아버지는 니어커를 잡고,
엄마는 손끝으로 겨울을 버텼다.
바다 냄새,
감태의 고소한 향.
손끝을 얼게했던 찬디찬 얼음물,
그건 우리 집의 생동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