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를 지키는 날
감태는 계절과 물때에 따라 움직인다
엄마는 장사를 마치고도 쉬지 않고 다시 바다로 나가셨다.
밤늦도록 감태를 씻고
양쪽 손잡이가 달린 양철에
비닐을 깔아 감태를 담은 채 새벽을 기다렸다.
버스기사는 물서린 양철동이와 감태 바구니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머리에 짐을 이고 오는 아주머니들을
외면하지 않는 시골 인심을 보이곤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두 번째 관문이 있었다.
바닷물이 차 있을 땐 그나마 쉽게 탈 수 있었지만,
쓴 물에 걸리면 배 옆구리에 걸어 둔
간이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타야 했다.
물길을 따라 통통배에서 내리면
"꿀껍닥이 깔려 있어도 뻘바닥이라 미끄랍다. 조심혀"
엄마는 젖은 감태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한 꾸러미는 손에 들고도 내 걱정이 먼저였다.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새벽 장사를 따라나서며
바다를 건넜다.
그날은 영미엄마도 영미와 함께였다.
시장은 말 그대로 도깨비 같았다.
하늘은 여전히 새벽빛인데,
사람들은 이미 많이 모여 시끌벅적했다.
각자 자기 자리를 확보하느라 어깨가 부딪히고,
누군가는 물건을 비켜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감태요 감태! 싱싱한 감태!”
“굴 사쇼, 오늘 건 속이 꽉 차있어라!”
쉴 새 없이 섞이는 목소리들 속에서 시장이 깨어났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물건을 펼쳐놓은 곳,
단속이라도 뜨면 순식간에 짐을 싸서 흩어지는 삶의 무대였다.
엄마는 금세 한 꾸러미를 팔아치우고는,
“막내야, 자리 좀 지켜라~.
엄마 저 가서 감태 가져 올텐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게 지나가는 그 시장 한복판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를 처음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낯선 아주머니가 우리 감태 대아를 힐끔 보더니
발끝으로 툭— 하고 차버렸다.
내가 대아를 주우러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미에게 재빨리 말했다.
“영미야, 저 대아 좀 가져와 줘.”
하지만 아주머니는 대아를 또 한 번, 세 번째 더 세게 걷어찼다.
순간, 내 속이 벌컥 끓어올랐다.
“이 아줌마가!"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내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크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나를 쏘아보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얼결에 두 손으로 그 팔을 꽉 잡았다.
“아줌마 왜 그러세요? 이 자리 우리 엄마 자리예요.”
“손 놔!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 어른한테!”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몰렸다.
손이 떨렸지만 뒤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엄마가 새벽마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며 살아낸 시간을 내가 지키고 싶었다.
그때,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막내야! 뭔 일이여?”
엄마는 젖은 감태 꾸러미를 이고, 숨 가쁘게 뛰어오고 있었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아주머니가 엄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조끄만 것이 어른한테 대드디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요?!”
엄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 옆자리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했다.
“아줌마가 잘못합디다. 자리 뺏을라고 애를 건드리더구먼 뭔 소리하요
애는 엄마 자리 지키려고 그런 건디.”
그 말에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맞아, 애가 뭔 잘못이 있다고 그래.”
“여기 원래 그 집 자리잖어.”
그제야 아주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투덜대다가 자리를 떠났다.
“괜찮여?”
그 한마디에 나는 참았던 눈물이 단숨에 쏟아졌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우리 자리’를 지켰다.
엄마의 자리이자, 우리 가족이 버텨온 자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미가 말했다.
“경아, 난 네가 항상 져주니까 싸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엄마의 하루는 쉬운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