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함으로 만난 하나님
국민학교 때부터
감태 일은 내 손에 가장 먼저 익숙해진 길이었다.
겨울이면 찬물이 손끝을 베듯 아팠고
손등은 금세 얼어붙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할 수는 없었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맡아야 하는 몫이었다.
나는 공부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집안일을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비 오는 어느 날의 대화를 계기로
교회는 더 이상 두려운 곳이 아니게 되었다.
언니는 약속을 지켰고
아버지 역시 이미 허락하신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 교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찬양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예배당 난로에서 풍기던 은은한 냄새는
얼어붙은 손을 감싸 안는 것 같았다.
겨울방학이 되자
중·고등부 수련회 소식이 들려왔다.
중학생 2학년이 되어 처음 가는 수련회라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엄마 몰래 옷가지를 챙겨두고
감태를 씻던 그날 아침에도
멀리서 버스 소리만 들리면
곧장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아, 버스 온다!”
시현이의 외침에
나는 들고 있던 감태를 대야에 '툭' 내려놓고 달렸다.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라 멀리서 보이는 버스를 보고도
집에서 달리면 충분히 버스보다 빨랐다
이날은 수련회를 가기 위해 버스탈 사람이 많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날만큼은 달리기를 못하는 나에게도 조금은 여유로운 날이었다
버스에 올라 헉헉거리며 창밖을 보니
마당의 대야와 감태,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길이 스쳤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발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기도원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예배당으로 향했다.
회숙이가 헌금함에 돈을 넣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아깝다.”
나는 겨우 회비 내고
감태를 씻다 달려온 탓에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헌금함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속으로 말했다.
‘하나님, 저는 가진 게 없네요.
그래도 제 마음은 드릴 수 있어요.’
기도원에서 맞은 둘째 날 저녁,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라는 말씀이 들려왔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뜨거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안수기도 시간,
나도 모르게 목사님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너는 내 딸이다”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그 음성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예배가 끝난 뒤
교회별로 방에 모여 기도가 이어졌다.
좁은 방에 두 겹으로 동그랗게 앉았는데
내 뒤에 있던 권사님의 손이 내 등에 닿았다.
자리가 좁아서 그렇겠거니 하고
방석을 조금 앞으로 옮겼다.
그런데 권사님은
내 등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딸아, 네 수고를 내가 안다.
네가 부모 공경하는 마음 내가 기뻐한다
네가 형제를 위해 애쓴 마음도 다 알고 있다.”
권사님을 통한 그 음성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음성이었다
말씀으로 부어지는 성령의 역사하심이었다.
봄의 모내기,
여름의 수박,
가을의 고구마,
겨울의 감태까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지치고 상처 입은 나의 몸과 마음,
내 삶 전체를 어루만지는 기도가 이어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직 어리지만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모습을 보고
기뻐하셨다는 것을.
눈물과 땀으로 몸은 젖었지만
마음은 놀라울 만큼 맑아졌다.
그날 이후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