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땀으로 고쳐진 변비
어느 때부턴가 나의 꿈은 전도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운 내가
과연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고 기도할 수 있을까,
늘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늘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교회에는 산기슭에 기도원이 하나 있었다.
여름 방학이면
중·고등부 수련회 3박 4일,
이어 여름성경학교 2박 3일,
꼬박 일주일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기도원은 깊은 산속은 아니었지만
낮이면 멀리 바다가 보였고,
밤이면 옛 시골처럼
주변이 온통 어둑해졌다.
산책로에는 풀과 나무가 무성했고
밤이면 가끔 부엉이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나는 낯선 장소에서 늘 긴장했다.
심지어 변을 보려 해도
그 긴장 때문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약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그 불편함과 불안은 몇 배로 커졌다.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날은
중·고등부 수련회를 마치고
여름성경학교 둘째 날 밤이었다.
아이들을 모두 재워 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한여름 산속의 재래식 화장실.
얇은 함석지붕 아래에는
낮 동안 머금은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 위로 ‘딩딩’ 소리가
규칙처럼 울려 퍼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멘트로 말끔히 둘러진 구덩이 안이 보였다.
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여름이라 습기만은 피할 수 없었다.
그 습기 위로
날파리 몇 마리가 천천히 맴돌았다.
거기에 모기까지 더해지니
한여름 시골 화장실의 풍경은
이미 다 갖춰진 셈이었다.
하지만 무서워할 틈은 없었다.
손에 비닐 종이를 쥐고
그 자리에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비닐장갑도 없던 시절이라
정말 여차하면
손가락으로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의 온몸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잠시라도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화장실 밖에서는
동네 동생 경애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한 시간째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생각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똥을 싸야 하지…’
“경애야, 안 되겠다.
내 옷 좀 받아주라.”
옷가지까지 맡겨 둔 채
나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저 너무 힘들어요.
제발… 똥 좀 나오게 해 주세요…”
처음엔
정말 단순한 필요의 요청이었다.
하지만 기도는 곧
내 잘못과 마음속 비밀들을
쏟아내는 고백으로 변해 갔다.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 되기까지 기도하셨다면,
나는 땀과 눈물이 섞여
작은 회개의 바다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모자를 잃어버리고도
제가 안 그런 것처럼 거짓말했어요.
아버지 주머니에서 몰래 300원을 꺼내
눈깔사탕을 사 먹었어요.
그리고…
진호오빠네 소가
우리 소를 뿔로 찍었을 때,
피를 흘리는 우리 소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그 집 소를 밧줄을 거꾸로 쥔 채
마구 때린 것도 용서해 주세요…”
어른이 보기엔
어이없고 사소한 일들,
하지만 어린 내 마음엔
모두 무거운 죄였다.
나는 두 시간 넘게 울며 기도했다.
그리고 결과는?
5박 6일 동안
단단히 뭉쳐 있던 것이
한 순간에 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온몸은 여전히 땀에 젖어 있었지만
깊은 곳에 막혀 있던 숨이
한꺼번에 뚫리는 느낌이었다.
‘후—’ 하고 내쉬는 숨처럼
몸도, 마음도
비워지고 정리되는 기분.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착한 일 하나
해낸 것 같은 확실한 해방감이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은 변비조차도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그날 밤, 나는 기도를 통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하나님께 맡겼다.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조금씩 담대해지고 있다는 것.
언젠가 전도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시길 바랐다.
그것이 내 어린 날의 기도였고,
변비로 시작된
나의 가장 진지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