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소리

노란 콩가루의 고소한 맛

by 장은경


오늘은 음력 1월1일 설날이다.

타국 필리핀에서 맞는 명절이지만

고향의 그리움만은 여전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우리 집 앞마당은

하얀 연기인지 모락모락 김인지.


가마솥에는 하얀 밀가루를 둘러 시루떡본을 만들어

찹쌀밥이 잘 익어가고

엄마는 무거운 솥뚜껑을 살짝 밀면서 밥의 숨결을 살핀다.


“인제 다 됐네.”


엄마는 밥 위에 소금을 살짝 뿌려 간을 맞췄다.

“인절미 만들라면 꼬들꼬들해야 혀.”


엄마는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밥을 떠
뜨거움도 모른 채
손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주셨다.


“막내야,
혼자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르겄다.”


찹쌀밥을 후후 불어 한입 베어 먹었다.
꼬들꼬들하고 짭조름한 그 맛에
엄마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았다.


뜨거운 찹쌀밥에서 피어오른 김이
내 얼굴을 간질였다.


엄마는 가마솥 위에 올려둔 시루를 내려
절구통에 담았고,

아버지는 긴 절구공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자, 인제 시작헌다.”

쿵—떡, 쿵—떡.

절구통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명절을 알리는 시작종 같았다.


아버지의 절구공이가
‘쿵’ 내려올 때면
뜨거움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밥이 달라붙지 말라는 뜻인지

엄마는 옆에 둔 찬물에 손을 헹궜다.


절구공이가 ‘떡’ 올라갈 때면
엄마는 절구통 안에서
밥을 재빨리 섞었다.


쿵—떡, 쿵—떡.

이건 절구공이의 노래 소리였다.


두 분은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호흡을 맞췄다.

절구공이의 한박자 쉼표는

밥알이 점점 찰기있는 반죽이 되어

콩가루를 만나러 간다.


엄마는 두꺼운 비닐을 펴고

그 위 노란 콩고물을 고루 뿌렸다.

뜨거운 찹쌀 덩어리를 올려놓고
다시 콩고물을 듬뿍 뿌린 뒤,
까만 가마솥뚜껑으로
길을 내듯 떡을 잘랐다.


자를 대지 않았는데도 그 떡은 반듯반듯
참 곱게도 그려 나갔다.

노란 콩가루 사이로 하얀 결이
보일 듯 말 듯 드러났다.


엄마는 작은 칼로
한 조각을 잘라 내게 내밀었다.


“요건 진짜 맛나.
조심혀, 뜨거운게.”


고소한 콩가루와 찰진 찹쌀의 쫀득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깊게 스며들었다.


그날의 인절미는
두 분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명절의 행복이었다


명절이면
명태전, 굴전, 꼬다리찜도 있었지만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은 인절미다.


가끔 TV 속에서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면
문득 절구 소리가 귀에 울릴 때가 있다.


그 소리는
시간이 아무리 멀리 흘러가도
사라지지 않는
우리 집 명절의 소리다.




작가의 이전글변비로 생긴 나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