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주사

울음을 삼키던 날의 기억

by 장은경


겨울의 끝자락,


교실 창문마다
성에가 희미하게 끼어 있었고,
아이들의 입김이 하얗게 흩날렸다.


그날은 유난히 교실이 술렁였다.

“얘들아, 오늘은 보건소에서 선생님들이 오실 거야.
불주사 맞는 날이다.”


담임선생님의 말에
아이들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누군가는 일부러 웃음을 터뜨리며 겁이 난 마음을 감추고

어떤 친구는 책상 밑으로 손을 넣어 팔을 문질렀다.


"야 이주사 진짜 아프대"

"그게 뭐가 아프냐 난 주사 맞을 때 한 번도 안 울었어"

교실은 '누가 가장 용감하냐'로 은근 경쟁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예전엔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 언니를 보면 천사라 했는데

오늘만큼은 무서운 사람으로 우리 앞에 섰다.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책상 위에는 주사기와 솜이
가지런히 놓였고,
알코올 냄새가 퍼지자 교실 공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아이들은 차례로 줄을 섰다.

다음은 영미였다.

"나 무서워 자리 좀 바꾸자"

겁먹은 얼굴로 속삭이며 졸라 대더니

어쩔 수 없이 조심스레 팔을 내밀었다.


"선생님! 살살해 주세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바늘이 들어가자 영미는
“아야!” 하는 소리 내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킥킥 웃었지만 모두가 무섭기는 한 가지였다.


“장 경!”

이름을 확인하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한쪽 눈을 꼭 감고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팔 걷고, 가만히 있자 금방 끝나.”


차가운 솜이 팔에 닿고 바늘이 들어오는 순간
살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울면 안 돼. 친구들이 다 보고 있는데.’


“잘했어요.”

선생님의 한마디에 그제야 겨우 숨이 풀렸다.

팔에 붙은 솜을 누르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남자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팔을 휘두르며 으스댔지만

정 많이 부운 친구들도 있었다


집에 오니 팔은 더 욱신거렸다.

“불주사 맞았다며... 아프냐?”

엄마의 물음에 나는 일부러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그깟 주사 하나 맞고 엄살은...”


하지만 나는 끙끙 앓은 척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시절엔 다 그랬다.

무섭다고 친구와 자리를 바꿔주고,

맞고 나면 울면서도 괜히 허세를 부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허세를 잊은 채 아픈 팔을 붙잡고 하루를 보냈다.


지금도 주사는 무섭지만

그날의 불주사는 울음을 삼키고,

용기를 흉내 내던 어린 날의 기억이다.




작가의 이전글고무신 배와 빨간 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