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사건 3

취하하라는 말 한마디

by 장은경

사건이 끝나 가는 듯 보였지만,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하나 남아 있었다.


법원에서 무혐의 의견이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저절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유리 부모님의 고소 취하가 있어야

이 싸움은 비로소 끝날 수 있었다.


그때, 나서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형부였다.


형부는 공무원이었고,

훤칠한 키에 단정한 인상,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항상 상황의 중심을 정확히 짚는 사람이었다.


“내가 직접 유리 아버지를 만나볼게.”

짧은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묵직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며칠 뒤,

유리 아버지의 가게 한쪽 가장자리에서

형부와 유리 아버지가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말보다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공기는 팽팽했다.


형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분했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유리의 일은 물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사고의 책임을 원장도, 담임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묻는 건
조금 가혹하지 않습니까.”

“앞날이 한창인 스물한 살 아이에게

이 정도의 무게를 지우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요?.”


유리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선을 테이블에 떨군 채

손가락으로 컵만을 만지작거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실은 담임인 줄 알고 잘못 고발했습니다

나중에 주임인걸 알고 그래도 자기 직원인데 생각하며

빨리 정리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합의를 안 해 줄 줄은 몰랐지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유리 아버지 목소리에는

어느새 피로와 후회가 담겨 있었다.


형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네를 이해한다는 듯

“저희도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도, 선생님도

상처만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마무리 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잠시의 침묵 끝에

유리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취하하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정지됐던 나의 모든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천천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큰 소리도, 극적인 장면도 없었지만

그 말은 어묵사건의 흐름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말을 마치고 형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수를 청했다.

그날 유리네 가게 문은 평소보다 일찍 닫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억울함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감정들이 남았다.

책임, 두려움,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그날 싸움에서 이긴 기분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잃고, 또 무언가를 배운 느낌에 가까웠다.


그 사건의 흔적은
나를 한동안 겁먹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일로 어른이 되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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