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사건 2

피고란에 적힌 내 이름

by 장은경

다음 날, 유리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이 뒤엉켜 있었다.


“어젯밤 우리 유리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가게도 문을 못 열었고요.

이걸…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가슴속으로 차가운 것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 교사였지만,

사고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나

예상보다 훨씬 큰 파문으로 번지고 있었다.


며칠 뒤, 우편배달부가 노란 봉투 하나를 들고 와 싸인을 요구했다

봉투 위에 적힌 글자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고소장!!

분명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이게… 뭐지?”

서류를 다시, 또다시 읽었다.

글자들은 분명한데, 현실감은 없었다.


사고는 은미쌤 토끼반에서 일어났다

어묵 냄새를 따라간 아이도 토끼반인데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미끄러진 바닥, 병원으로 달려간 은미.

모든 상황은 분명했지만,

그런데 나는 ‘주임’이라는 이유로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나는 심각했다.


그러나 원장님은 서류를 보더니 가볍게 말했다.

“유치원 담당자에게 다시 체크해 보라고 할게요.”

우리 유치원에는 따로 담당자가 있었다.
하지만 원장과 담당자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얼마 뒤, 또 다른 봉투가 도착했다.

이번엔 ‘법원’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봉투를 찢는 손이 떨렸다.

피고란. 그 자리에 또다시 내 이름이 있었다.


“말도 안 돼….”

담임도 아니고, 원장 아닌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왜 모든 화살은 나를 향하고 있었을까.


억울함보다 먼저 밀려온 건 공포였다.

법원, 검사, 책임.

그동안 현실과는 다른 세계의 말처럼 느껴졌던 단어들이

하루아침에 내 일상이 되었다.


밤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사건을 되짚었다.

‘담임인 은미 아버지는 경찰이고,
원장님은 사회적 위치가 있고…
그래서 힘없는 나를 표적으로 삼은 걸까.’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은미의 아버지였다.
현직 경찰인 그는 차분히 조언했다.


“검사 만나면 말은 짧고 정확하게.
앞뒤 다 설명하려 들면 오히려 꼬여.”

검사실에서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검사는 두툼한 서류를 넘기며
이미 결론을 확인하듯 나를 바라봤다.

“당신이 주임이었죠?”
“사고 당시 어디에 있었습니까?”
“왜 아이의 옷을 벗긴 겁니까?”


그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치의 곁을 내주지 않은 검사의 말을 뚫고

"저도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했더니 나를 당돌하게 본 건지 아님 안쓰럽게 본 건지

"할 말 있으시다고? 해보세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코끼리반 담임입니다.
각자 맡은 반이 있고, 저는 제 반 아이들과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접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수업 중에는 다른 반 상황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원장도 아니고, 토끼반 담임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저를 고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하는 게 맞습니까?

저희 유치원의 지리적 위치와 환경 뭐 그런 것도 좀 보시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검사는 서류를 덮으며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짧게 웃었다.

“선생님,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담임도, 원장도 아니면서.”

그 한마디에 몸을 죄고 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검사실을 나오며 은희가 물었다.

“괜찮아?”

“응… 이제 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은희가 말했다.

“그럼 나도 한마디 해도 되지?”
“응.”


“나 좀 실망이야. 이런 상황에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그래도 검사라길래, 좀 늘씬하고 잘생긴 사람일 줄 알았거든,

근데 어쩜 내가 상상한 거랑 그렇게 정반대일 수가 있어?
턱은 세 개에, 한 오십다섯쯤은 돼 보이는 드럼통 아저씨라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은미다운 농담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크게 웃었을 텐데
그 농담을 온전히 받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었다.


긴 싸움은 끝난 듯 보였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남아 있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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