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함과 뿌듯함의 공존
“선생님들, 잠깐만요. 오늘 재롱잔치 준비 회의부터 시작할게요.”
올해는 작품 전시, 율동, 웅변, 연극, 악기 연주까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 한 명당 세 가지 이상 무대에 오르니, 누가 봐도 버거운 일정이었다.
진경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임 선생님… 밤새는 거 각오해야겠어요.
우리가 실습 나와서 가장 처음 접한 큰 행사가 재롱잔치였다.
지금이야 재롱잔치 의상을 대여해 주는 곳이 있어 빌려 쓰면 되지만,
그때는 모든 의상을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야 했다.
거의 일회용처럼 쓰일 의상들이었지만
선생님들의 손으로 밤늦게까지 만들어졌다.
나는 선생님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알아, 힘든 거. 그래도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아이들 보면 다 괜찮아져.
우리 힘내자. 파이팅!”
며칠 뒤부터는 정말 전쟁이었다
풀칠이 안 된다며 손가락에 풀을 묻혀 와 보여주는 아이,
찰흙으로 조각상을 만들며 이쑤시개가 안 세워 진다며 울며 쫓아오는 아이,
풍선을 불고 내게 냄새까지 맡아보라며 웃는 아이들.
1년 동안의 작품이 전시 코너에 하나씩 늘어갔다.
오후가 되면 무대 연습이 시작됐다.
“자, 산토끼 다시! 여기서 점프~ 팔 쫙!”
이럴때 보면 우리는 선생님이 아니라 목청 큰 동네 아줌마들 같았다.
밤이 되면 교실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아이들이 돌아간 자리에서 우리는 의상 정리, 전시 코너 꾸미기, 무대 세팅으로 새벽까지 씨름했다.
벽에 그림을 붙이며, 전등을 조정하며, 커튼을 다시 달다 보면 어느새 새벽 두 시.
진경이 바닥에 털썩 앉아 투덜댔다.
“우린 노동자야, 노동자. 봉사도 이런 봉사가 없어
그러니 노조를 안 할수 없지. 수당도 없고."
"그래서 선배들 덕분에 월급은 올랐잖아 "
은미가 피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보여줄 추억을 우리가 만들어주는 거잖아. 그게 우리의 몫이기도 하고.”
“글쎄, 아이들이 기억이나 할까? 엄마 아빠들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
준비하는 과정 속에는 누군가의 수고와 불평이 함께할수밖에 없었다.
주임으로 3년째, 재롱잔치 날.
무대 위에 올라선 아이들의 작은 손짓,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율동을 보는 순간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다.
삐뚤빼뚤 춤추고, 배우인 듯 고개를 까딱이며 노래하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얘들아, 최고였어. 정말 잘했어.”
피곤한 얼굴로 내게 안기는 그 작은 몸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복도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수많은 준비가 한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허무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흩어진 종이, 벗겨진 의상, 무대 뒤 어지러운 소품들 사이에서
‘그래도… 잘했어.’
올해의 재롱잔치는 마음 깊이 오래 남아 있었다.
재롱잔치의 여운도 채 가시기 전에 곧바로 졸업식 준비가 시작된다.
무대 꾸밈, 졸업증서, 앨범 사진, 부모님 좌석 안내까지.
손이 닿아야 할 곳이 한둘이 아니다.
입학식 날, 낯선 교실 앞에서 울먹이며 엄마 손을 꼭 잡고 서 있던 아이들이.
어느새 따뜻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봄에는 견학을 갔다.
유달산 개나리 축제에 노란 유니폼을 입고 줄지어 걷는 아이들.
보물이나 되는 듯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꽉 쥐고 있던 작은 손들.
한여름엔 작은 수영장에 갔다.
물이 무서워 울던 아이, 튜브를 끼고 씩씩하게 뛰어들던 아이.
물속에서 퍼지는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가을엔 단풍놀이.그림그리기 대회도 있었다.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세상을 그리던 진지한 표정들.
재롱잔치.
부모님들이 웃고 울던 그 무대 위에서
아이들은 한 해 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졸업.
처음 만났던 그 어린 얼굴들이
이제는 씩씩하게 교실을 뛰어다니고
작은 가방을 스스로 메고 복도를 걸어간다.
교실 불을 끄기 전, 나는 잠시 서서
사진 속 작은 얼굴들이 미소 짓는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희망이 차오른다.
올 한해,
기쁨도, 고됨도, 설렘도,아쉬움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