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싸움
아직도 합의가 되지 않는 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유리를 다시 만나러 가던 날,
은미 쌤과 둘의 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미안함은
아직 숙제를 다 마무리하지 못한 까닭이다.
문을 두드리자 유리 엄마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평소보다 낮아진 목소리에는 이미 지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리는… 잘 지내고 있나요?”
은미쌤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유리 엄마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집에만 있어요. 유치원은… 그날 이후로 못 보내겠더라고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은미쌤의 눈동자에 슬픔이 고였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조금 더 신경 써서 유리를 챙겼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유리 엄마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 침묵 속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실망, 분노, 피로, 그리고 우리를 향한 원망까지.
“진짜 마음이 무겁네요 유리가 괜찮아야 할 텐데…
수술은 몇 번 해야 하나요?.”
은미쌤도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이번에 해 보고 상황 봐서 한두 번은 더 해야 할 듯싶어요
아직 어린 피부라 재생은 잘 된다지만 옷을 벗기면서 살깟이 벗겨진 상태라서… “
유리 어머니는 말씀을 잇지 못했다.
“그렇죠 우린 어른이라도 놀랐는데 ,
우리 유리는 평생 상처에 …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더 깊은 골이 생겨났다.
우리는 결국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을 나서는 순간,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에 묻어 있는 냉기가,
방금까지 참아냈던 감정들을 한꺼번에 흔들었다.
“유치원도 못 간다니… 마음이 아프다.”
“흉터가 크게 남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러게~ 유리한텐 더 큰 상처로 남겠지 마음에도 어깨에도...”
며칠이 지나고 유치원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근데…” 은미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유치원, 요즘 … 괜찮은 걸까?”
나는 이미 알고 있던 말을 어렵게 꺼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소문이 너무 빨리 퍼졌어.
‘어묵사건이 있었대’하며…
등록하려던 사람들도 줄고 해서 … 결국… 문 닫기로 했대.”
말이 끝나자 은미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충격을 받거나 어이없을 때면 늘 그러듯,
고개를 살짝 든 채 눈을 질끈 감고 침을 삼켰다.
그 작은 움직임이 더 큰 말처럼 느껴졌다.
“정말… 끝났네.”
아이들 그림이 붙어 있는 벽,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삐뚤빼뚤 적힌 글자들,
작은 손으로 만들었던 종이접기 카네이션.
그 카네이션 하나를 떼며 한동안 서 있었다.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왔지만,
지금의 현실은 아이들의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은미쌤이 낮게 말했다.
“이걸… 어떻게 치우지?
아이들 손길이 다 남아 있는데…”
“나도 아직 정리가 안된다.
처음으로 내디딘 내 직장생활이 사라짐으로 마무리되다니...”
유치원에서의 3년.
즐거운 시간들을 다 묻어버린 채
‘어묵사건’은 결국 이 모든 시간의 마지막에 큰 금을 그어버렸다.
몇 번이고 만났지만 합의는 쉽지 않았다
서로가 생각하는 합의의 기준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합의는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참 소중했는데.”
그리고 그 소중함 위에 짐처럼 얹혀 있던 미안함도,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처럼 오래도록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