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랑하리라.
도서관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농구수업을 가야 하는 아들이 버스를 놓쳤다며 전화가 걸려왔다. 부라 부랴 아들을 만나 체육관 앞에 내려주고, 수고한 내게 커피 한 잔과 혼자의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 커피점 의자에 앉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머금고 도서관에서 받아 온 수필집을 열어 찬찬히 읽어 본다. 몇 자를 읽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시선을 멈춘다. 핸드폰을 열어 메모장에 지금의 감정이 잊히기 전에 떠오르는 말을 양 엄지 손가락으로 바삐 움직여 기록한다.
우선은 평온함과 감사함. 오늘 낮, 내가 내게 선물한 햄버거와 커피 한 잔. 물건의 값어치를 떠나, 시간과 함께 내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하루라는 생각. 날씨가 따뜻하고, 미세먼지도 없이 하늘도 푸르러 기분까지 좋았던 느낌이 떠오른다.
이후 이어지는 고뇌와 번민. 조금 전까지, 아들의 농구수업에 데려다주는 길에 태도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차 안에서 아들의 태도에 대해 혼을 좀 냈다. 요즘 들어 아들을 혼내는 일이 부쩍 늘었다. 힘든 일로 지쳤던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옳지 못한 훈육 태도인걸 아는데...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아들은 버스를 놓치고 짜증이 났는지, 차에 타자마자 인사도 없이 짜증 내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는 것이 거슬렸다. 잘못된 것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그래봐야 무서워하지도 않는걸.. 자신도 알 텐데..
요즘 나의 가장 큰 숙제는 아들의 언행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바르고, 적극적으로 개선시킬까 하는 것이다. 볼 때마다 잘못된 내 모습을 보고 학습되어 나타나는 거울효과 같다는 생각에 나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잠깐의 시간이지만,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다. 무엇이 잘못된 행동이고, 다음에 이런 감정에서 떠올리며 감정을 잘 표현하길 바라면서. '감정 표현하는 방법을 더 보여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게 바른 행동인지 스스로 느끼고 돌아보는 생각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보다 잘못을 느낀다면 스스로 변할 필요성을 깨우치는 시작점이니까. 그리고 아들이 감정표현을 적절하게, 부드럽게 하는 것은 나의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나도 아빠가 처음이라 항상 의도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어쩌겠는가. 참고, 기다려 줘야지. 당장에 태도를 바꿀 방법은 내가 잘하는 것이다 다. 짜증 나는 말을 하는 것도 나와 아내를 보고 자라며 배운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내 책임인 것을..
잠시 후... 조금 전의 고민은 잊고, 다시 나와 마주한다. 흘러나오는 음악과 쌉쌀한 커피 한 잔, 아흔일곱 할머니의 수필을 다시 읽어 내려가며 그녀의 감정을 느껴본다. 이 순간만큼은 조금 전까지의 불편한 감정은 사라졌다.
아흔일곱 작가 할머니는 나이 든 아들에게 느낀 섭섭함을 글로 풀었다. 아마도 당시의 답답하고 섭섭한 감정을 어디에 말 못 하고, 그녀와의 대화를 적었을게다. 이를 읽고, '나도 나이 들어 자식들에게 섭섭한 감정을 글로 쓰게 될까? 그럴 일 없어야지. 더 잘해야겠다.'라고 다짐해 본다.
그러니 잘하던, 못하던,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무한히 믿고, 더더더 사랑을 주어야겠다. 중년의 껍데기에도 어린 자아가 남아있어 나조차도 방황하는 때가 있으면서도, 자식은 잘 키워보고 싶은 것이 그나마 성장한 아빠의 책임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