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산책, 나와의 대화

내게 야망이란?

일요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다.

엊그제 새벽 산책의 감정이 충만했던 것일까.


눈이 떠지자 산책 갈 생각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잠옷을 벗어던지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다.


옹기종기 한 방에 모여 자고 있는 가족들이 깰까 살며시 안방 문을 닫고 까치발로 거실을 향해 발을 대딛는다.


집을 나서 산책 길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온전한 나와의 시간이라 어떤 새로움을 만날지 설렌다.


영감의 원천, 습관처럼 유튜브를 열어 알고리즘에 뜨는 철학 강의를 골라 들으며 새겨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나의 과거를, 현재를 그리고 꿈꾸는 미래를 끼워 넣어본다.


최진석 교수의 강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작은 사람으로 살았다. 선진국을 따라서 사는 나라. 이제는 그 그릇의 크기가 다 찼다. 추격국가에서 더 쫓아갈 게 없다. 이제는 선도국가로 가야 한다.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남는다.


내게 있어 야망은 무엇일까? 평범힐 존재가 어쩌다 선택한 고립된 삶 속에서 야망을 갖는다는 것.


마음속에 가득 숨긴 생각들을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어떤 두려움과 마주할 때마다 목표를 낮추고, 이제는 조용히, 욕망을 잠재워야겠다고 생각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다시 가만히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너에게 어떤 야망이 있니?"


"야망을 갖었던 적은 없어.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그 꿈을 정리하고 있는 시간이야."


"그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는 말이니?"


"모든 불꽃은 약해졌는데, 여기저기 번져서 어떤 불꽃을 유지할지 생각 중이야. 바람이라도 불면 금세 불길이 커질 것 같거든."


어둠 속에 잔잔히 켜져 있던 촛불이 날이 밝으니 빛의 존재가 잠시 희미해진 것일까? 그걸 모르는 아이가 촛불을 더 많이 켠 모양새일까?


나는 왜 이런 내면의 갈등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내면의 나에게 계속된 질문을 퍼붓는다. 잡지도, 놓지도 못하는 작은 손, 아니 보이지도 않는 손으로 말이다.


다음 산책에서는 또 어떤 대화를 나누고, 답을 찾아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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