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감 후의 아카시아 향기 - 내게 주는 선물

미래의 내게 향기의 추억을 선물하다.


이쪽, 저쪽을 달리며 겨우겨우 네트를 넘겨 공을 보낸다. 땀이 삐질삐질, 평소에 웬만하면 뛰지 않아 땀 흘릴 일이 없건만. 공을 넘기는 날 만큼은 땀범벅될 각오가 되어있다. 시간이 부족하단 핑계에, 비싼 레슨비에 시작할까 말까 고민고민만 하던 운동을 요즘 시작했다. 벌써 테니스를 친지 두 달째다. 생각했던 것 이상 재미있고, 나에게 맞는 운동인 것 같아 만족감이 충만하다.

내게는 고가의 레슨비라 고작 일주일에 하루, 20분 훈련을 한다. 그마저도 어제는 낮잠을 자다가 레슨시간을 놓쳤다. 잠에서 깨었을 때 소파 위에 누워있는 내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그때 코치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늘 안 오시나요' 문자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전화를 걸었다. 원래 출석하지 않으면 레슨은 소멸되는데, 어떤 가능성의 불씨를 직감하였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코치님, 아... 제가 자다가 이제 일어났네요."
연기력이 없으나, 최대한 불쌍하게 말했다.
"아, 그럼 내일 가능하세요?"
"네, 내일 가능해요."
"그럼 내일 오세요"
야호!! 쾌재를 외쳤다. 물론, 입으로 터지지는 않았다. 마음속에서 부른 조용한 외침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보너스로 얻은 레슨.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땀이 비 오듯 온 들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네트를 넘어 공이 반대편 코트에 꽂힐 때마다 어떤 카타르시스, 그 충만감이 솟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코치님이 연신 "와~ 잘하시는데요."
"코치님이 잘 알려주신 덕분이죠."
기회는 이때다. 레슨이 끝나고 공을 줍기 전,
"서비스 연습 좀 해봐도 될까요?"
코치님은 마다하지 않고, 연습 기회는 물론 서비스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런... 보너스까지. 매우 감사하다. 레슨비가 비싸지만, 서비스가 좋으니 오늘 이달 마지막 레슨인데, 다음 달도 등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원래 더 배우려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뿌듯함과 쾌감, 만족감, 알 수 없는 그 어떤 충만감, 기대감. 온갖 긍정적인 감정이 쏟아짐에 행복하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장이 나타난다. 마음의 여유 덕분인지 먼지는 사라지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순간 자연히 발길이 멈추어졌다. 그리고 꽃잎을 한줄기 뜯어 코에 댄다.


"아.. 향기로워라" 또 속으로 말한다. 걷는 내내 아카시아 꽃을 코에 대고 숨을 들이마시며 기분 좋게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 문득,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후 동네 아카시아 나무에서 아카시아 꽃을 뜯어 입으로 쪽쪽 빨아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웬만한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 향기는 저장용량이 부족한 머릿속에 숨어있던 추억을 순식간에 불러온다.

'찰칵찰칵' 한 줄기 아카시아 꽃이 내게 선물한 기분 좋은 향기. 그 추억을 남기고 싶은지 자연히 사진을 찍는다. 또 어느 해 아카시아 꽃을 만나면 지금이 어떻게 기억될까?

감정의 동물. 그 개체들 중 티끌보다 작고 불완전한 존재가 나이다. 그렇기에 의지와 관계없이 불안, 좌절, 실망 같은 부정적 감정을 겪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부정의 불씨는 바람이 불기 전에 빨리 긍정의 분말가루로 덮어버리는 게 나를 살리는 길임을 어느덧 체득했다.

윤나이. 마흔다섯 오월 어느 날. 하나뿐인 첫 조카의 생일날. 이렇게 운동 후 충만감으로 가득한 오후 햇살 아래를 거닐고 또 거닐며, 아카시아 향기의 흔적을 사진과 글로 남겨 미래의 내게 추억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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