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침묵은 무엇인가? - 밝은 빛이다.(2-2장)

2장) 침묵은 빛이다.


표현하기보다 침묵이 익숙함을 받아들인 후로는 애써 벗어나려 하거나,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가는 동반자 중 하나로 인정한다. 침묵의 시간은 세상을 관찰하는 시간, 누군가의 삶을 듣는 시간, 그를 통해 나를 생각하는 시간, 그리고 결국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탄생하는 과정으로 활용된다. 새로운 나를 생산하기 위해 씨앗을 심는 부작위로 위장한 세심한 적극적 위장 행위인 것이다.

나의 밭에서 무엇을 생산하기 위해서 매 순간 씨앗을 찾고, 심고, 밭을 가꾸고 있다. 무엇을 판매할지, 나눌지는 아직 모른다. 잘 익어가고 있다고 여겨지면 그때 결정해도 괜찮지 싶다.


지난 시절, 계절이 변하고, 해가 바뀌며 어떤 생산을 했는지 돌아본다. 직업, 가족, 자녀, 꿈, 깨달음, 가치관, 친구...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원래부터 소유하고 있던 것일지 모르지만, 무소유의 삶에서 시작해 무소유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참 많은 것이 생산되고, 쓰이고, 버려졌다.

지난 생산에 안주하지는 않고 싶다. 그것은 더 나은 생산과 풍부한 생산성을 위해 얻고, 배워 가는 도구로 사용하면 좋겠다. 지난 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것을 생산하고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이유다. 무소유를 추구하는 삶을 지향하면이처럼 생산을 갈망하는 모순점이 드러난다.

법정스님도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덕분에 소유의 과정에 무소유를 적절히 버무려 넣는다. 그러니 나의 무소유에 대한 관점은 생과 사의 위치, 그 과정지나치지 않기로 함에 있다. 모순은 아니라 말하고 싶다. 다양한 욕망을 경험한 후의 무소유. 채워가는 과정의 절제. 더하면 다음 세대에 좋은 유산을 남겨준 후의 무소유이다.

그렇기에 솔직히, 난 소유를 위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소유를 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누구보다 노력한다. 그릇을 채울 정도로 최대한의 소유를 지향하되 과욕하지 않기 위해 절제하고, 소유를 통해 누리는 삶을 살고 싶은 이유이다. 단, 그 소유를 위한 과정이 욕심인지 욕망인지의 선을 넘나들 때면, 정도를 떠올리며 침묵하고, 침묵하며 길을 찾는다.

내게 있어 침묵, 그 침묵으로 얻은 무소유의 가치는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얻은,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결과물로 탄생한다. 생산을 통한 나만의 만족감, 다시 나의 만족감을 위해 생산하는 시간이 침묵의 시간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생산 공장이 하나였다면, 공장이 더 다양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침묵이 길어지기도 한다.

침묵. 침묵을 오해하는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답답함. 친밀함을 원하는 자에게는 관계를 이어 가지 못하는 장애요소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한 사실을 반성한다. 그럼에도 그 침묵조차 내게는 꼭 필요한 삶의 도구요, 고마운 존재다.

침묵이 오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친 뒤로, 글은 침묵의 억눌림을 빛나는 가치로 드러내는 목소리로 탄생한다. 침묵의 오해가 나를 넘어지게도 하였고, 침묵 속에 남은 글이 나를 일으키기도 한다. 세상에 모든 것들처럼 동전의 양면과도 같던 침묵이다.

팽이처럼 돌고 도는 동전이 넘어져 어떤 면이 보일지라도, 더 이상 내 삶에서 침묵은 멈춰진 동전의 보이는 면에 머물지 않는다. 동전이 어떤 면으로 넘질지라도 면보다는 밝은 빛만 드러난다. 그 비친 불빛에 따라 금빛이든, 은빛이든 밝은 빛으로 탄생할 뿐이다. 이로써 침묵은 빛으로 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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