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할머니]

"주말에 갈게."

by 래연

이번 주, 다음 주 같은 수식어 없이 툭 뱉은 말이었다.


토요일은 내일로 미루면 되었고,
일요일 오전은 오후로 미루면 충분했다.
귀찮음과 죄책감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할지 망설이다가, 애매한 시간이 되면
‘그래, 이번 주라고 특정하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하고 마음의 불편함을 덜어내는 말.

주말에 갈게는 그런 마법 같은 문장이었다.


참 신기하게도 죄책감 같은 마음의 불편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옅어진다.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든 노인과 눈이 마주친 뒤 한 번 고개를 돌리고 나면,
다음번 비슷한 순간에는 자리를 양보할지 말지 고민하는 일조차 생기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외면하는 법을 배워버린 나는

할머니가 입원하고, 수술을 하고, 회복실로 옮겨진 뒤에야 첫 병문안을 갔다.


그때의 나는 곧 회복해 집으로 돌아올 할머니보다 먹고 사느라 지친 스스로가 더 안쓰러웠다.


어릴 적, 내가 입원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병원 밥을 먹는 날보다

할머니가 싸온 도시락을 먹는 날이 더 많았다.


손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 채운 도시락,
갈아입을 속옷, 수건까지 챙겨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버스에 올라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가면 되는 지금의 나와 달리,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발걸음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도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그것을 미룬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결코 소파에 앉아

‘조금만 더 있다 가야지’라거나
‘다음 주에 갈까’ 같은 계산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안다.

나를 보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내일 면회 갈 땐 뭘 싸 가서 먹일까.
이불이 얇아 보이던데, 더 두꺼운 걸 가져가야 하나.

뒤돌아서는 순간부터 다시 눈에 밟히는 손녀.


나는 분명 할머니에게 그런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먹으며 자란 나는
당장 내일을 택한 할머니와 달리
늘 나중을 고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안녕,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