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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훈 Mar 15. 2024

2024.2.26~2024.3.1 독서목록

독서 기록

12.12쿠데타와 나, 장태완 저 이콘출판
시대에 맞서는 진실

12.12쿠데타에 관심을 둔 계기는 영화 <서울의 봄>이었다. 감독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창작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거침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름이었다. 전두환이 전두광으로, 노태우가 노태건으로 등장했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지나치게 몰입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찜찜함도 남았다. 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장군이 이태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캐릭터에 차이를 두려 했다고 설명한다. 전두환이 이미 불 같은 성격이었기에, 비슷한 성격인 장태완 장군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고 여긴 탓이다. 의도적으로 장태완 장군을 배제했다는 의도를 마주하자 궁금증도 생겼다. 마침 오래 전 절판된 수기가 복간됐다.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다.


책을 읽으면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장태완 장군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불 같다던 성격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로지 담담하고 냉정한 어조만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었을 뿐이다. 문무겸비(文武兼備)라 함은 장 장군을 두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배울 점도 많았다. 장태완 장군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책을 덮고 나선 그를 흠모하게 됐다.


비참한 현실은 시류에 편승하라며 사람들을 부추긴다. 악인이 승리하는 세상에서 선을 부르짖을 수 있는가? 진실을 논하는 일은 언제나 무겁지만, 그렇다고 입을 다물어서도 안 된다. 장태완 장군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글을 남긴다고 했다. 책을 읽고 난 뒤로는 글을 쓸 때마다 자문하게 된다. 나는 그만한 기백으로 글을 쓰는가? 만약 아니라면 책을 읽은 보람도 없을 터다.




형식과 영향력, 리디아 데이비스 저 에트르 출판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가운데 가장 끔찍한 고통은 출산이다. 1부터 10까지 지표를 나눈다면 10에 해당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글쓰기도 쉽지 않다. 머릿속 생각을 풀어내는 과정이 출산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글쓰기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아마 속으로 코웃음치면서 '헛소리!'라고 얘기할 사람이 많을 듯하다. 이 책을 처음 본 나도 그랬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 전 레딧에서 유행했다던 한 문단짜리 소설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대표적인 소설 하나를 소개한다.


"전혀 이해되지 않는군. 너는 인류를 혐오하는 AI잖나. 그런데 인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왜지?"
"왜냐하면 가장 사소한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 그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줄짜리  SF소설, 레딧-


고작 다섯 문장이지만, 소설이다. 처음 봤을 땐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글쓰기에는 형식이 없다. 그러나 글을 배우면 배울수록 형식에 매인다. 글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리디아 데이비스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글을 써 보라는 조언을 건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초고는 걸레다'라는 말을 남겼다. 처음 쓴 원고를 맘에 들 때까지 퇴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설가 김훈이 소설을 쓸 때 접사 은, 는 중 더 적절한 표현을 고르려 한 시간을 고민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다시 내게 돌이켜 왔다. 나는 그렇게 글을 써 왔는가? 안타깝게도 그러진 못했다. 일단 저질러 보자. 일기든, 산문이든, 시든, 한 줄짜리 소설이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안 남는다.




좋은 불평등 최병천 저 메디치출판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오스카 라퐁텐, 전 독일연방공화국 재무장관-

불평등은 나쁘다.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대하는 기본 관념이다. 부가 공평하게 배분되는 현상만이 옳다는 믿음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평등이 옳은가? 30년 전에 붕괴한 소련을 보자. 반 세기 가까이 지속된 냉전은 자본주의 진영이 승리하면서 끝났다. 소련 붕괴는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명제를 증명한 대표 사건이었다.

교과 과정 내내 사회 교과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극복해야 할 적폐라 가르쳤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기,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불평등 해소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정작 불평등을 감소한 시기는 이후 들어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였다. 소득주도 성장을 부르짖던 문재인 정부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다. 왜 그랬을까?

오늘날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에 큰 영향을 받는다. 중국 경제가 호황일 때는 한국 소득이 감소한다. 반대로 중국이 쇠퇴하면 한국 경제가 호황을 맞는다는 뜻이다. 수출 주도 경제 성장을 이룩해 온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사실에 주목하는 대신, 과를 대부분 전임 정권에 전가하는 행태를 보인다. 중국 경제 사이클을 따라 한국 경제가 호황과 불황을 오간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국민이 적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성장 발전 모델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외부 영향을 덜 받는 방향으로 경쟁력을 제고하는 길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려면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고, 그에 맞는 치료를 병행해야만 한다. 저자는 한국 경제가 병들어가는 원인을 제대로 짚었다. 정책 입안들이 책을 한 번쯤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누구나 한국에 태어났다면 잘 살든 못 살든 상관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다. 불평등한 경제 현상에 분명한 원인이 있음에도 빈부 원인을 남에게 떠넘기기만 한다면 결국 남탓일 뿐이다. 이들에게 죽으라 종용하기만 하는 일은 옳지 않다. 다 함께 잘 사는 지상 낙원이 불가능한 꿈일지언정, 누구나 숨 붙이고 살 수는 있어야 한다. 병폐를 넘어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최근 준비할 게 많아 독서에 소흘했다. 반성한다. 다시금 집중해서 책 읽기를 이어나가려 한다. 그동안 리뷰를 기다렸던 사람이 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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