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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훈 Sep 11. 2024

2024.9.2~2024.9.6 독서목록

사람이란 무엇인가


세뇌의 역사, 조엘 딤스데일 저, 에이도스출판
만들어진 자유의지


멀쩡한 선이 휘고, 같은 길이가 다르게 보인다. 착시 그림이다. 혼란스럽다. 뇌는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지만, 감각은 뇌를 속인다. 의심은 사람이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란 증거다. 안타깝다. 미디어는 사실을 보이고 진실을 가린다. 중립 보도는 없다. 데스크는 관점에 따라 기사를 고르고 독자는 기사를 읽은 대로 생각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의지를 갖는다. 생각과 판단도 개인에 달렸다고 믿는다. 대중은 사실을 보면서도 점점 본질과 멀어진다.


20세기 초 정신의학이 등장했다. 과학은 세상이 자연법칙을 따른 결과임을 증명했다. 인간도 물리 법칙을 거스를 순 없었다. 종교에 머무르던 정신도 현실로 넘어왔다. 심리학자들은 환경이 생각을 바꾼다는 믿음을 굳혔다. 권력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대중은 사상을 강요하는 일에는 저항했지만, 자유 의지를 따르는 데에는 순응했다. 권력은 자유 의지를 활용해 저항을 잠재우려 했다. 1920년대 파블로프가 노벨상을 받은 배경이다. 소련은 조건 반사 작용을 활용해 정치 활동을 통제하려 했다.


한국 전쟁은 미국에게 충격을 안겼다. 미군 포로 29명이 귀국을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파블로프에 관심이 없던 미국은 정신의학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LSD와 해군특수전단 무수면 훈련이 탄생했다. 사회에서도 정신조작 사례가 잇따랐다. 테러 현장에서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발견됐고, 종교계에선 '인민 사원'과 '천국의 문' 사건이 잇따랐다. 사람들은 모든 사건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잇따랐지만, 정신 지배에 대한 회의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현대인은 스스로 세뇌한다. 세뇌는 정보가 차단되고 생각이 끊기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SNS는 사용자 편의에 초점을 맞춘다. 알고리즘은 대중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미디어는 관점을 정한다. 개인은 사건을 보고 판단하기보다 언론이 제시하는 논조를 따른다. 현대인은 좁게 생각하고 번거롭게 배우지 않는다. 타성에 젖은 개인은 자유 의지를 따른다고 확신한다. 칼리굴라가 돌아온 세상에서 나는 나에 속아 산다. 세뇌를 깨려면 산파가 필요하다. 현명한 사람은 오직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만 안다.




중국필패, 아싱 저, 생각의힘출판
중국을 다스리는 방법


국토는 크지만 사람 그릇이 작아 중국(中國)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에서 중국을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다. 중국은 6.25 전란 때 북한을 도와 한반도를 반으로 갈랐고, 2000년대 중반에는 동북공정을 펼쳐 고구려를 역사에 편입하려 했다. 최근 들어선 한 발 더 나선다. 한류가 주목받자 한국과 문화가 자국 소유라 우긴다. 세계 중심이라는 국명이 아깝다. 사람들 생각 대부분은 여기서 그친다. 한국은 보수 여당 임기 동안 중국에 맞서는 길을 선택했다. 전적은 시원찮다. 싸우려거든 알아야 하지만, 알아보지도 않고 싸우려 든 탓이다.


아싱 황은 중국을 EAST로 설명한다. 차례대로 시험(Examination), 독재(Autocracy), 안정(Stability), 기술(Technology)이다. 중국은 과거제로 독제 체재를 완성했고, 오랜 기간 안정을 추구했다. 중국 역사는 범위를 희생하고 규모를 키우는 과정을 반복했다. 혁신이 곧 생명인 현대 사회에서 멈춰선 중국이 살아남는 이유는 그동안 키워 온 규모 덕분이다. 제 살을 깎아먹으며 버티지만, 결국 시간 문제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 자리에서 물러날 뿐, 앞으로도 존속할 가능성이 높다.


나쁜 소식이다. 한국은 이제 막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선진국에서는 서비스 산업이 핵심이다. 제조업 중심 성장을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 한국 소비산업에서 서비스업 비중은 49.3%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OECD 국가 서비스 산업 비중은 74.3%였다. 한국인에게 선진국 호칭이 낮선 이유다. 선진국은 제조업 대부분을 외국에 의존하고, 중국은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안도 마땅치 않다. 우방국을 선택해도 문제다. 현재 한국 우방국 중 제조업 중심 산업을 육성하는 국가는 없다.


한국에게 중국은 마뜩찮다. 그런데도 손을 맞잡아야 한다. 중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 때 시장을 개방했다. 미 행정부는 다양한 대북 정책을 시도했고, 대부분 실패했다. 오래 걸리는 목표를 단기 전략만으로 공략하려 들었던 결과다. 아싱 황은 중국 정부가 범위를 넓힐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대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대중은 한국인이 수박을 마음껏 먹지 못한다며 조롱하지만, 중국 농민이 착취당하는 사실은 모른다. 중국은 제조업을 인질로 삼았다. 어떻게 맞서야 하나. 결국 생각에 달렸다.



무진기행, 김승옥 저, 민음사출판
니체는 죽었다. 한국에서.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허무주의가 무엇이냔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했다. 명료한 만큼 오해도 많다. 거인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그는 신권에 도전한 대가로 산 꼭대기까지 둥근 바위를 굴리는 벌을 받았다. 기독교 세계도 비슷하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 인간은 그 때부터 이상향에서 현실로 유리됐다. 두 신은 똑같이 이룰 수 없는 목표란 벌을 내렸다. 희망은 판도라 상자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때문에 인간은 헛된 목표를 좇다가 죽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삶을 멈추려면 죽어야 한다. 그러자 신은 사후세계를 만들었다. 신이 탈출구를 막자, 사람은 무자비한 신벌 앞에서 더 무력하다. 신이 벌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조히스트다. 마조히스트에게 벌은 곧 쾌락이다. 삶이 벌이라면 삶을 즐기는 사람은 마조히스트다. 마조히스트가 사는 세상에서 신은 사람을 벌하지 못한다. 사람을 벌하지 못하는 신은 죽는다. 시시포스가 즐겁게 돌을 굴리자 올림포스 신들이 사라졌고, 아담과 하와가 인생을 즐기자 창조주가 소멸했다. 니체는 그렇게 신을 죽였다.


신은 대한민국에 산다. '나'는 간데없고 과업만 있다. 1960년대. 한국은 목표에 목을 매달고 내달렸다. 번듯한 목적의식은 사회 속 개인을 말끔히 지워냈다. 김승옥은 공허함을 달래려 펜을 쥐었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은 좌절한다. 고향을 방문해도, 낮선 남자와 밤을 보내도, 불우한 이웃을 만나도,  구직 활동을 해도, 하숙집 주인 딸을 꼬셔도 공허하다. 그래서 강간 모의에 가담하고, 무분별한 성생활을 찾고, 부문별한 소비를 즐기면서 저항한다. 역겨운 소재는 이야기를 잉태한 세상을 조용히 고발한다.


60년이 지났다. 여전하다. 어떻게 지내냔 친구 질문에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답하고, 소개팅 자리에선 연봉과 직장을 먼저 묻는다. 한국이 싫어서 외국에 나가기도 한다. 자동차가 생겼고, 벌이가 늘었고, 번듯한 직장이 생겼고, 국적도 바꾼다. 오직 '나'만 없다. 니체가 죽였던 신은 이 땅에서 되살아났다. 60년 넘게 집권하면서 사람에게 신벌을 내린다. 사람이 끝없는 비교 속에서 좌절하는 동안 세상은 헛된 희망만 불어넣는다. 니체가 죽은 이 땅에서 마조히스트는 다시 신을 죽인다. 삶을, 오늘을, '나'를 사랑하기에.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저, 바다출판사
정치적 동물


인간은 동물이다. 생물학은 사람을 척삭동물문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으로 분류한다. 도구를 사용하고, 재미를 즐기며, 사회 제도를 만드는 특성을 지녔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동물로 여겼다. 믿음은 과학이 깼다. 과학은 영장류도 도구를 사용하고, 재미를 즐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치 영역만 관측되지 않았다. 인간은 동물이 되길 거부했다. '정치적 동물'이란 용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오만한 인간은 금방 동물 세계로 돌아왔다. 프린스 드 발이 1970년대 네덜란드 동물원에서 침팬지 무리를 연구하며 정치적 특성을 발견한 덕분이었다.


권력 투쟁은 연구 지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10년 동안 침팬지 무리 지도자는 네 번 바뀌었다. 암컷 침팬지 마마에서 수컷 침팬지 에이룬으로, 에이룬에서 도전자 침팬지 라윗으로, 라윗에서 다시 에이룬으로, 에이룬에서 다시 젊은 침팬지 니키로. 권력은 짧게는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천천히 이동했다. 유혈 사태도 전체 다툼 중 0.3% 수준에 그쳤다. 에이룬과 라윗 니키는 서로 반목과 야합을 반복하면서 주도권 싸움에 참여했다. 침팬지 정치는 현대 의회 정치만큼 복잡하고 정교했다.


침팬지 사회는 인간 사회 같다. 어린 암컷 침팬지는 높은 대접을 받지만, 어린 수컷 침팬지는 박한 대접을 받는다. 우두머리 관점에서 보면 간단하다. 어린 암컷은 종족 보전에 유리하지만, 어린 수컷은 미래 지위를 위협한다. 인간 사회도 비슷하다. 여성은 젊은 시기 큰 영향력을 보이지만, 남성은 중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성 대부분이 중년 여성을 뜻하는 아줌마 호칭에 민감한 반면, 남성 대부분이 아저씨 호칭에 둔감한 이유다. 아직 전성기를 맞지 못한 젊은 남성 대부분이 정치에서 소외되는 모습도 닮았다.


침팬치는 생물이다. 번식하기 위해서 다투고 다투기 위해서 생존한다. 그렇다고 자연 법칙을 따르기만 하지도 않는다. 싸우면 화해하고, 손해를 보면 돕지 않는다. 연구팀은 침팬지가 정치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봤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인간 사회는 침팬지 사회처럼 투명하지 않다. 사람이 침팬지보다 똑똑하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 사회에 산다. 때문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행동을 설명하려고 장황한 수식어를 늘어놓는다. 사회가 복잡할 땐 잠시 인간에서 벗어나도 좋겠다. 결국 인간도 동물이다.




사람은 세 번 늙는다. 30대 중반에 처음 늙고, 50대 중반에 다시 늙고, 70대에 완전히 늙는다. 벌써 부모님이 두 번째 단계를 지났다. 고운 손에 주름이 잡히고, 얼굴이 퍼석하다. 어머니는 한사코 거부하던 혈압약을 잡수시고, 아버지는 생각지 않던 식단 관리를 시작하셨다. 늙기가 서럽다지만, 지켜보는 입장도 슬프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부모님 댁 찾아뵈랴, 일하랴,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글쓰기를 잊었다. 급한 일부터 먼저 하라던 말도 있지 않나. 지난 두 주 동안 책보다 부모님이 급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어린가보다. 아직 늙지 못한 어리석은 젊음을 부디 이해해주시라. 읍소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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