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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청년 남성에게 왜 이러나

자유주의 정당이 2030 남성을 적대하게 되기까지

by 전지훈

‘낙동강 오리알’은 어정쩡한 위치에 홀로 고립된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왜 하필 ‘낙동강’이고 ‘오리알’일까. 여러 학설이 있지만, 예로부터 한국을 찾는 겨울 철새였던 오리가 갈대숲이 무성한 낙동강 삼각주에 터를 잡는 모습에서 비롯한 표현이라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오리가 떠난 자리에 산란지에서 낳았어야 할 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외톨이에 빗댄 것이 ‘낙동강 오리알’의 어원이라는 이야기다. 현시점, 탄핵 국면을 맞아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서 침묵하는 청년 남성들의 모습은 ‘외로운 늑대’라기보다 ‘낙동강 오리알’에 가깝다. 지난 두 달 동안 레거시 미디어는 이 어색한 침묵을 ‘2030대 남성의 보수화’로 해석하기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과연 그런가.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얼추 맞는 듯하지만, 당사자의 주장은 조금 다를 성싶다.


청년 남성의 정치적 고립은 ‘타의적’인 결과다. 그 기원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30대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네 명 중 세 명 꼴로 탄핵에 찬성하는 동시에,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현상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였다. 이 시기 민주당은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하나는 41% 득표율로 정권을 창출했음에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단독정부를 수립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 과정에서 지지율을 확보하기 위해 ‘강성’으로 분류되는 사회 계층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민주당이 2015년경부터 트위터를 중심으로 확산한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했던 여성계와 정치적인 연대를 형성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후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성 관련 문제에서 ‘공정성’을 중심으로 한 남성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랐지만, 당시 민주당은 이런 의사 표현들을 남성들의 반 페미니즘적 ‘백래시(backlash)’로 규정하며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남성 무시 행보는 2019년 2월 22일 설훈 전 민주당 최고의원의 폴리뉴스 인터뷰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설훈 전 의원은 2018년 후반 20대 남성들의 민주당 지지율 하락 원인을 ‘보수 정권의 교육 때문’으로 설명했다. ‘청년 남성들이 못 배워서 자유주의 정당을 거부한다.’라는 논리가 정당 최고의원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이 그 후로도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표는 2022년 대선 당시 선거 막바지에 ‘2030대 여성’에게 투표해 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당시 제도권 언론의 관심 밖에서 계속됐던 성별 갈등을 무시한 처사로, 민주당의 행보에 반발한 남성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건 윤석열 측에 결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주당이 청년 남성들을 무시해 온 역사는 최근까지 이어져, 박구용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이 공공연하게 ‘청년 남성을 고사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배경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청년 남성들은 여전히 ‘낙동강 오리알’이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을 지지해 봤고, 2022년 대선에서는 윤석열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두 정당은 청년 남성의 ‘표심’만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징병과 취업, 결혼 분야에서 남성에게 전통적 남성상을 요구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목소리도 내 봤지만, 이들의 의견은 공론장의 담을 넘지 못했다. 때문에, 청년 남성들에게 ‘광장의 정치를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라는 진보 진영의 번드르르한 주장과 이재명 대표의 연이은 ‘우클릭’ 행보가 와닿을 리 없다. 비전 없는 정치에 실망한 청년 남성의 절반은 현시점 차기 대선 후보 설문 조사에서 선택을 유보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지난 한 주 동안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등 언론지에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청년 남성 계층을 긍정적으로 조망하는 기사가 등장한 사실은 이들에게 약간의 희망을 제시한다.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통치는 정치 위에 세워진다.’라고 했다. 미셸 푸코의 미시정치학이 정치를 ‘관계’로 정의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이 주장은, 탄핵 국면 이후의 한국 정치가 ‘통합’과 ‘포용’을 향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물론, 헌법 34조 3항이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고 있듯, 한국 사회가 성차별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반박하진 않겠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청년 세대의 성별 갈등을 기성세대의 호혜적 관점에서 해결하려 했던 민주당의 시도는 분명 문제였음을 지적하고 싶다. 최근 겨울 철새였던 청둥오리가 한반도에 눌러앉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철새의 토착화로 인한 여러 문제를 우려하지만, 그렇다고 청둥오리를 절멸하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철새에게조차 관대한 사회는 유달리 청년 남성에게 엄격하다. 생물 다양성을 주장하면서도 청년 남성을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모순적인 행태를 2030대 남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현재로서는 탄핵이 끝나고 도래할 새로운 정치 시대에 희망을 걸어 보는게 최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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