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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고시, 왜 어려울까

언시 준비생의 사소한 고민과, 그를 통해 찾은 불완전한 답에 대하여

by 전지훈

‘자녀가 순수예술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걱정하셔도 좋습니다. 그들이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고대 그리스일 테니까요. 순수예술, 철학 전공자들에게 행운을 빕니다.’ 미국 쇼 프로그램의 대명사, 코난 오브라이언은 2011년 5월 23일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명언을 남겼다. 14년이 지났다. 인문대 졸업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온몸으로 취업 시장 한파를 맞고 있다. 최근, 본격적으로 새로운 직무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강의를 들었다. 업계 현황과 취업 전망, 그리고 이직에 대한 총론이 마무리되고,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을 때였다. 수강생들이 앞다퉈 질문을 올리기 시작하며 정신없이 메신저 창이 넘어갔다. 쏟아지는 물음들 가운데 딱 한 질문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순수예술 전공도 괜찮을까요?’


순간, 코난 오브라이언의 익살맞은 졸업 축사 연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웃고 지나갈 일이지만, 사실 ‘돈 안 되는’ 학문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진지할’ 수밖에 없다. 의외로 방송계에서 일하다 보면 ‘사학’이나 ‘철학’, ‘신학’, ‘무용’ 등 사회가 효용성을 의심하는 학문을 전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들이 전공한 학문이 기자나 PD, 아나운서, 작가 등 방송 직무 종사자들이 갖춰야 할 직무 역량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방송은 탄생 이후로 늘 ‘사람’을 생각해 왔다. 그게 예능이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일 수도 있겠고, 뉴스가 될 수도 있다. 장르만 다를 뿐, 사람이 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다 보니 취업 과정에서는 정량적인 ‘스펙’보다 ‘얼마나 사람을 이해하는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언론사 입사 시험을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처럼 통과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언론고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론사 입사가 힘든 이유는, 현대 사회가 생소하게 여기는 소양을 갈고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콘텐츠를 생산하기보다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 왔다. 2022년 겨울,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예종 예술사 과정에 진학하려 했던 시기가 있었다. 서류전형을 뚫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에 대한 난해한 영어 지문 문항이 가득했던 필기전형을 통과한 다음 최종 면접 전형에 올랐을 때였다. 당시 교수진이 내가 제출한 서류와 답안지를 보면서 ‘이곳은 지식을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생산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공부하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너는 우리 교육기관이 지향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멋들어지게 돌려 말한 셈이다. 당연하게도 떨어졌지만, 당시 ‘소비가 아닌 생산을 지향하는 공부의 존재’를 마주했던 경험은 방송국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


신문을 읽다 보면 지면에서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나오는 기사를 마주하게 된다. 읽고 평가하기는 쉽지만, 막상 쓰는 일은 쉽지 않다. 현상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주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커뮤니티에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제목에 배우 원빈의 텔레비전 광고 사진과 함께 ‘전 3D로 봅니다.’라는 내용을 덧붙인 글이 올라오곤 했다. 살짝 어이가 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언론사 필기전형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다양한 현안과 사건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적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공부하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싶은 때도 있긴 하지만, 현직에서 이런 주관 없이 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주관 없이 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독창적인 생각을 내놓아야 한다면 어려운 게 당연하지 않나. 더욱이 ‘내 생각’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공부 과정에 참고할 만한 규범이나 왕도(王道)도 없다. 결국, ‘사유할 줄 아는 인간’만이 방송국에 발을 붙일 수 있다.


오늘도 나를 포함해 답 없는 글과 씨름하는 동지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으면서 적어도 그 고민이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며, 언젠가는 그 끝을 볼 날이 오리라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나지막이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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