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납되는 장애와 그렇지 못한 장애, 사랑보다 지하철 타기가 어려운 사람들
가수 아이유의 신곡 Love wins all이 24일 발매되었다. 발매 전부터 동성결혼 합법화 슬로건으로 쓰인 문장 live wins를 제목으로 했다고 말이 많았던 것 같던데 결국 발매 전 all을 붙여 수정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좋은 문장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며 생각난 몇 가지 의문과 나름대로 생각해 본 답을 이곳에 기록하려고 한다.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쉽게 답을 예상할 수 있는 의문이다. 보기에 나쁘지 않으니까 골랐을 것이다. 가수가 연기한 언어장애인은 겉으로 볼 때 그녀가 수화를 하지만 않는다면 비장애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단안 시각장애인도 팔다리 중 하나가 없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겉모습으로 바로 알 수 있는 다운증후군 등과 다르게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가 극도로 적은, 쉽게 말해 기분나쁘지 않은 장애인이다. 하긴 휠체어를 타고서는 디스토피아 배경에서 달아나는 장면 연출이 아주 힘들어지긴 할 것이다. 봤을 때 시각적으로 거부감이 심하지 않은 장애 중 적당히 촬영하기 쉬운 걸로 고르지 않았을까?
사실 단안 시각장애나 부등시(한쪽 눈의 시력이 극도로 나빠서 두 눈의 시력이 많이 차이 나는 것)를 가진 사람들은 안 쓰는 눈의 근육이 퇴화해서 초점이 맞지 않거나 보이는 쪽 눈과 다르게 움직이는, 흔히 사시라고 하는 증상을 거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기 좋지 않으니까 그런 것은 뮤비에 반영하지 않고 컬러 렌즈로 대체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이라고 꼭 눈동자가 흰색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뭐, 사시보다야 회색 오드아이가 더 보기 좋다는 의견이 있었겠지. 뮤직비디오에서는 단안 시각장애인을 연기한 가수가 계속 컬러 렌즈를 낀 눈, 즉 안 보이는 설정인 눈을 강조하는 듯한 각도로 연기에 임한다.
해당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감독은 주인공들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말하지 못하는 이와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의 디스토피아 세계관 생존기’로도 보이는 이 뮤비에는 여러 상징이 존재한다. 아이유의 입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인이 작게 걸려 있는데, 이는 곧 세상과 온전히 소통하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뜻한다. 뷔 역시 왼쪽 눈에 백색의 렌즈를 착용해, 한눈에 보기에도 두 사람이 세상의 난관들을 헤쳐가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은 ‘네모’로부터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서로를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각자 상처를 입고 지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이겨내고자 한다.
말하지 못하는 이와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의 디스토피아 세계관 생존기... 참... 눈 두 쪽 다 보이고 말 잘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정말 흥미로울 것 같긴 하다. 컬러 렌즈와 체인으로 장애를 표현해야 비로소 알아챌 수 있는 장애들을 찍으면서 엄태화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렇게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장애인들은 참 힘들겠다? 아니면 그저 화면이 예쁘게 나와서 좋다? 나는 감독이 되어본 적 없어서 모르겠다. 그런데 단안시가 그렇게 '세상의 난관들을 헤쳐가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거였나? 비장애인들이 윙크하면 보이는 세상이 그건데... 운전면허시험도 2종이긴 해도 단번에 붙었는데... 뭐 확실히 동체시력이 좀 떨어져서 구기종목은 어렵긴 한데 개인차가 워낙 커서 나는 잘 모르겠다. 이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눈 한쪽만 보인다고 안 보이는 쪽 눈은 안 가려주는 거 너무... 좀 웃기지 않나...? 아니 눈과 눈 사이가 그렇게 멀지도 않던데 가리는 김에 두 쪽 다 가려주지...
가사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의 이 가난한 상상력으론 떠올릴 수 없는 곳으로... 가난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차치하고 가난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란 혹시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일까? 비장애인들이랑은 다르게 좀 뭔가가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 단어를 선택한 걸까? 아니면 장애를 가진 삶을 상상한 적 없이 단순히 막연하게 힘들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는 비장애인들의 기준에서 이야기한 걸까?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상상하는 게 두 쪽 다 보이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과 막... 그렇게 다르고 그럴까? 언어장애인이 상상하는 건?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상상하는 건? 뭐가 다른가? 장애가 없었던 시절에 상상하던 걸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최근에 장애인이 된 사람이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뭔가 다른 게 있는지... 그런데 작사가는 장애 여부에 따라 상상하는 게 다른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냥 상상했나? 본인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수에게 당장 나가서 장애인 인권에 몸 바치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소재로 나와서 그런 김에 이야기하는 거지. 세상에 사랑을 못 하는 장애인이 있나...? 서로 마음 통하면 사랑하고 잘 살지 않나? 그에 비해 지하철은 멀쩡히 헌법으로 이동권 보장된 국민인데도 못 타던데 좀... 그렇지 않나...? 남의 창작물에 말 얹고 싶지는 않은데 장애인을 연기할 거면 최소한 신경쓰는 척이라도 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대혐오의 시대에서 장애인은 디스토피아 배경 속에서 정체모를 정육면체에게 쫓기는 예쁘고 잘생긴 모습이 아니라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혹은 자신의 집이나 거울 속에서 불특정다수를 불편하게 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사실 이게 가장 궁금했다. 감독이 이야기하기로는 캠코더가 내적 혹은 외적인 모습을 뛰어넘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보는 장치라고 한다. 캠코더로 본 세상에서는 컬러 렌즈를 끼고 단안 시각장애인을 흉내내던 가수가 렌즈를 빼고 멀쩡한 두 눈으로 화면을 바라본다. 감독과 가수가 생각하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 중에는 애꾸나 언어장애가 없는 모양이다. 아마 다른 장애도 없겠지? 장애는... 안 예쁘니까..? 그런데 사실 내적 혹은 외적인 모습을 뛰어넘는다면 장애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장애가 있는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나? 아닌가... 장애나 상처나 더러움 없이 깨끗하고 화장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캠코더인가보다. 다양성은 장애가 아닌 부분에서만 존중받을 수 있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극복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비장애인들이 자기 머릿속에 들어있는 차별과 혐오의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모두가 존재하는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세상 아닐까?
창작자는 당사자성이 없는 소재로도 충분히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그것까지 뭐라고 할 생각은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자신이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입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창작자로서 최소한의 존중이 있어야 한다. 장애는 기호나 상징이 아니다. 그저 보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더해주기 위해 혹은 연출적으로 아름답기 위해 가볍게 넣을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물론 동성혼 합법화 슬로건도 그렇다. 창작윤리란 무엇일까. 당사자성이 없는 소재를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기호로 쓰는 행동은 왜 좋지 않을까.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표현할 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게 올바른 창작자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여러 의문이 남았지만 그래도 노래는 좋았다. 워낙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니까. 나 보라고(눈알 개수가 약간 부족하긴 한데 보이긴 다 보인다.) 만든 노래는 아닌 것 같았지만, 성소수자거나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봤으면 아무 불만도 의문도 없이 예쁜 곡이라고 했겠지. 나만 너무 불편하게 세상을 보는 걸까? 그냥 평생 한쪽 눈만 가지고 살아서 세상을 좀 삐뚤어지게 보는 건가? 뮤직비디오 속 캠코더로 봤을 때 현실의 모습과 좀 다르게 보일 모든 사람들은 나보다 덜 예민해서 속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