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한번에 25만원 써서 지금 정신 나감
물가가 너무 비싸다...
6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청산하고 자취방을 계약해서 이제부터 학식이 아닌 음식을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당장 필요한 걸 샀더니 한 달간 쓰려고 책정해둔 식비 예산의 5/6을 다 썼다.
나는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요리도 그럭저럭 하고 가지고 있는 알레르기가 좀 흔하지 않은 탓에 밖에서 먹고 고생하느니 그냥 집에서 안전한 음식 먹자는 생각도 있고... 그래서 이왕 자취해서 조리도구가 있는 집에 사는 김에 즉석식품이나 배달음식 말고 집밥을 해먹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보통 집에서 구운 생선과 고기, 요거트, 과일, 시리얼, 구움과자 등을 먹는다. 별 생각 없이 그러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내가 생각하기에 한 달 분량으로 샀는데...
가격이......
25만원이 나왔다.
식용 금이나 캐비어, 통 트러플 같은 걸 산 게 아니다. 뭐 한남더힐에서 와인먹여서 키운 무항생제 한우랑 비료에 금가루 섞어뿌린 샤인머스캣도 안 샀다. 그냥 밀가루 버터 설탕 과일 그런것만 좀 샀는데 25만원이 나왔다. 이게 말이 되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산 걸 정리했다.
밀가루(박력분)
무염버터
가염버터
설탕(백설 흰설탕)
달걀
과일 조금
아이스크림 한통
비스킷
살구잼
딸기잼
식빵 두봉지
홀그레인머스타드
치킨스톡
고형카레
가시 발라진 대구토막
생크림
우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팝콘 한상자
그래놀라시리얼
호두정과
올리브유
크림치즈
그릭요거트
찹쌀떡
닭꼬치(그냥 장보고 나오는길에 팔길래 먹고싶어서 삼)
이게 25만원이다. 말이 되냐? 여기에다 원래 쓰던 헤어오일 다써서 그거랑 수분크림 좀 샀더니 삼십만원 채우더라 살라는건지 말라는건지...
갑자기 기숙사 나온게 후회된다. 그냥 4500원짜리 학식이나 먹을걸 왜 집밥을 해서 도시락을 싸가겠다고 돈을 이렇게 썼지...? 심지어 필요한 걸 다 산 것도 아니고 햇반이랑 요리용 술이랑 베이킹파우더랑 저울같은 건 본가에서 가져왔거나 가져올 예정이다. 아그냥 1350원짜리 컵라면이나 30일동안 90개 먹을걸... 헐 그래도 1350*90 하면 십이만원이네 물가 진심 장난아니다 십삼만원 차이면 그냥 집밥 해먹는게 나은듯
내가 자취생답지 않게 모든 식사를 간장계란밥과 김치볶음밥으로 때우지 않았다고 혼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적당히 되는 음식 먹지 수프랑 크림소스 얹은 구운 대구랑 과일 콩포트 얹은 아이스크림을 한 끼에 다 먹으려고 하니까 장 한번 보는데 이십오만원씩 드는 거 아니냐고. 만약 그런 생각이 든 사람이 있으면 새벽 네 시에 브런치 보지 말고 나가서 뛰어라. 뛰는 김에 쿠팡이츠를 좀 해서 부수입을 얻는 것도 좋겠지.
나는 알레르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한식을 먹기가 어려운 체질이고 사실 모든 사람은 알레르기가 있든지 없든지간에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으며 지갑사정이 좀 빠듯한 사람이라고 매끼를 컵라면과 간장계란밥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법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을까... 아 내가 들은 건 아니고 걍 인터넷에서 물가 너무 비싸다는 글에 무항생제돈육 사지 말고 싼고기 사라는 댓글 달린거 봐서 하는 얘기다. 모든 소비를 최저가 갓성비로만 하면 지갑 사정은 좀 괜찮아질지 몰라도 삶이 많이 팍팍해지지 않을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윤석열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단속이라는 건 퀄리티(질)를 기준을 딱 잘라줘서 이것보다 떨어지는 건 형사적으로 단속하라는 건데, 그것보다 더 아래도, 완전히 먹으면 병 걸리고 죽는 거면 몰라도, 이걸 부정식품이라 그러면은, 아니 없는 사람은 그 아래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된다는 거야
아마 대통령선거 전에 불량식품 관련 질문에서 나온 대답인 것 같은데 공직에 선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휘의 조잡함이나 절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법을 훈련받지 않은 것 같은 면을 제외하고 이야기의 요점만 보면, 가난한 사람이 조잡하고 건강하지 못한 먹을거리를 자발적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자는 거다. 이게 말이냐?
단지 식료품 구매에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건강하지 못함을 감수하라니, 이게 공직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당장 공직도 아니고 나라에서 받아먹은 거라곤 소득분위에 따른 국가장학금밖에 없는 나도 금전적으로 덜 여유로운 사람이 덜 건강할 음식을 자발적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존중되는 나라보다는 누구나 소득에 상관없이 자기 몸에 건강한 음식과 식재료를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더 좋다는 걸 아는데 법 몰라서 사법시험 9수한 건 그렇다쳐도 인간의 도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아 9수라고 하니까 갑자기 좀 의심스럽긴 하다 설마 진짜 몰라서 저렇게 말한 건가..? 저지능은 어떤 불운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에서 책임져야 하는 문제이긴 한데...
하진짜한숨만나온다 난 그냥 장바구니 비우는 게 무서워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일단 인터넷주문한 머스타드 오면 근처 돈가스가게에서 두개에 이천오백원 하는 새우튀김 사서 샌드위치 만들어서 도시락 싸야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나는 블로거니까 유익한 정보전달을 하나쯤은 해야겠지?
여기서 잠깐!
서울우유 버터는 진정한 버터와 거짓된 기만의 팜유덩어리로 나눌 수 있는 거 모두 알고 있나요?
진실된 버터는 버터 포장지 우측 하단을 보면 유크림이라는 말이 써져 있답니다. 유크림이 100%에 가까워질수록 진정한 버터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거죠. 가염버터는 빵에 발라 먹으라고 소금 들어있어서 그런거니까 괜찮아요 0.81%는 소금이에요 가디언지에서는 이쪽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긴 함
그에 비해 거짓된 기만의 팜유덩어리는 가공버터라는 말이 쓰여져 있어요. 가공버터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발림성이나 맛을 위해서라고도 하지만, 누가 믿겠어요?) 유지방에 야자유(팜유랑 같은 거에요 기름야자나무에서 얻음) 같은 식물성 기름을 섞은 거에요. 역겨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야자나무 열매는 과육과 코코넛밀크 이외엔 별로 쓸모가 없는 것 같긴 하네요. 칼로리도 진짜 버터보다 높으니까 전 안 먹을래요.
그리고 좌측의 고소한 버터는 가공버터 99%지만 아침에버터는 51%밖에 안 들어 있지 않나요? 무슨 차이일까 궁금해져서 성분표를 봤는데 나머지 49%에는 콩기름이랑 팜경화유가 들어있네요. 향료랑 유화제랑 물이랑 보존제도 좀 들어있고요. 저 중에 진짜 유크림은 얼마나 들어있을까요? 옛날에는 식물성 기름을 바닥 광택제 등으로 사용했다던데 서울우유가 참고했으면 좋겠네요. 저는 가공버터라고 표시된 제품을 사본 적 없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