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안에서

by 이공칠

주말은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일을 마친다. 나는 낮은 감정들로 가득 찬 채 습관처럼 고민하고 있다. 택시 운전사의 낮은 목소리가 고민을 잠시 멈추게 하고 나를 현실로 불러오게 한다. 해가 짧아졌는지 택시는 어두운 도로를 달리고 있다.



“KTX는 비즈니스 트레인이라서 무언가 여행하는 기분이 덜 들지 않나요?” 나는 평소처럼 기사 아저씨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한다. 큰 고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러고 싶다. 그러나 이어지는 아저씨의 질문에 무심코 대답하게 된다. “그래서 손님은 어디를 가나요?” 안산이요. 광명역에서 택시 타고 가요. 말하고 보니 꽤나 자세하다. 아저씨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어서 말을 한다.



“광명에서 안산이라… 버스로 가는 노선이 많이 없죠? 아이고. 서해안 벨트를 살려야 하는데 그쪽에 사람이 많이 사는데.” 아저씨는 나에 대해 걱정을 하는 건지 아니면 KTX에 대해 걱정하는 건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나는 그 목소리가 마치 학교 선생님을 닮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서해안 벨트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지금 택시를 타고 가는데 왜 저 아저씨는 버스 노선을 들먹일까? 역으로 가는 이 길도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타도 되는데. 나는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들을 애써 누른다. 아저씨는 이런 생각을 무시하곤 갑자기 핸드폰으로 지도를 검색해서 보여준다. 혼잣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중얼 거린다. “아산에서 인천, 부천까지 연결하는 열차가 또 필요할 거 같은데, 아니 또 이렇게 보니까 파주까지 연결해야겠네.” 나는 반쯤은 못 들은 척 창 바깥을 본다. 까만 하늘 덕분에 바깥 풍경보다는 표정 없는 얼굴이 스친다. 여전히 아저씨는 말한다.



“거기, 안산 어디에 살아요? 제가 저번에 인천에 갈 일이 있어 가다가 중앙동에 정든닭발이라고 닭발집 가서 포장을 했어야 했는데 못했거든요.” 나는 아저씨 말의 거기가 된다. 잠시 숨을 멈추고 내쉰다. 아 저는 월피동에 살아요. 중앙동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어요. 나도 모르게 아저씨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 아저씨가 내가 사는 곳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아까부터 이런 생각들만 한다. “있잖아요. 정든닭발 주변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가 20년 전에 갔었거든요.” 아저씨는 애초에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안산이라는 말을 통해 지금 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지금은 건물들이 많아요. 오히려 새롭게 짓고 있을 정도예요. 나는 그런 아저씨의 태도에 왜 친절하게 대답을 할까? 그런 아저씨라도 대화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이전에 내 생각들이 그저 민망한지 잘 모르겠다.



“KTX는 여행하는 기분이 없지 않아요? 오히려 무궁화호가 열차 여행 가는 기분이고 좋은데.” 이 아저씨에게 기차는 여행의 의미가 큰가 보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저씨가 조금은 멋져 보인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이런저런 이동 수단에 대한 과정이나 여유로움을 생각하는 모습. 처음 모습과는 다르게 보인다. 여운이 가기 전에 아저씨는 불쑥 말을 던진다. “그레이하운드” 갑작스러운 아저씨의 말에 나는 개의 한 종류를 떠올린다. 아저씨의 핸드폰은 그레이하운드를 검색한다. 그리고 나에게 핸드폰을 쓰윽- 하고 내민다. 핸드폰 화면에는 개가 아닌 어떤 버스 사진이 있다. “이게 한 40년 전에 경부고속도로가 막 뚫렸을 때, 그때 있던 버스예요. 참 멋지지 않아요? 이 안에 화장실도 있고 그래요.” 아저씨에게 버스도 하나의 여행 과정이다.



그러네요? 오히려 지금 버스 보다 모양이 조금 더 멋있는데요?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아저씨는 그런 내 말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제 택시는 어두운 도로를 달린다. “거기 이만오천 원인데 만칠천 원만 줘요.” 아저씨는 스스로 요금을 정하고, 내리는 뒷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말한다. 눈앞엔 스산한 바람과 화려한 역의 불빛이 나를 반긴다. 20년이 지난 닭발집과 40년이 된 버스가 무슨 소용일까? 무엇인지도 모를 고민들이 묘하게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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