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색깔은 무엇일까? 검정색이다. 눈을 감으면 끝없는 어둠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그게 생각의 색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늘 이러한 어둠 속에 둘러싸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늘 외로워했다. 그래서 MBTI로 나를 규명하는 게 좋았다. 나라는 인물이 설명하기 편해졌으며, 무수히 많은 다른 내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예민함과 신경질적 불안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 안도하게 되었다. 나의 소음은 그 안에서 태어났다.
내가 나라고 인식된 날이 언제인가? 나는 나라는 존재를 직접적으로 마주했을 때가 군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시작해서 카뮈의 [이방인], 카프카의 [변신]등을 읽었다. 하루키의 초기 작품들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을 좋아했고, [노르웨이 숲]을 가지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전까지는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다. 그저 예민했고, 나 스스로도 그 예민함을 설명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실존주의’라는 불완전한 세계 안에 가두었다. 나를 나와 내가 아닌 다른 것들과 구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이의 간극인 부조리에 대해 늘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래, 이 부조리가 나의 소음들이다. 물론 이 실존주의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라는 사람의 정의를 올바르게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무엇이 ‘나’인가? 내 육체는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이러한 물음들에 늘 고민하고 그때마다 새로이 답을 한다.
부조리가 소음으로 인식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나는 소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에 대한 글을 써두었다.
‘그것은 바로 나 역시 소음 밖에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이 오로지 한국어 밖에 없었고 내가 듣거나 생각하는 모든 과정이 한국어라서 그렇다. 나는 그렇게 나의 소음을 뱉는다.’ J.A.B에서
https://brunch.co.kr/@ba7dbba2e3494f1/4
후쿠오카로 여행을 갔을 때, 한 LP 바에 갔다. 한국인에게 아마 유명한 이 바에서 나는 소음에 대해 생각했다. 소음은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생각이 많은 나에게 이러한 소음들은 ‘나를 쥐고 흔드는 무언가’인 것이다. 나는 그러한 소음에서 탈출하고자 일본으로 향했고, 그 소음을 내뱉는 것은 주위 사람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언젠가 꾸었던 꿈인 작가가 되기를 소망한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쓰기를 거부했다. 나라는 인물을 감추고, 여러 인물을 만들었다. 그래야 더욱더 솔직하게 내가 가진 소음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통해 나와 세계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화해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