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나방

by 이공칠

치지직— 치직- 가로등이 깜빡이며 소리를 낸다. 펑 - 하는 소리를 끝으로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다. 주변의 벌레들은 어느새 가로등 불빛 주위로 빙빙 돌다가 방향을 잃은 듯 가로등 빛에 부딪친다. 잠시 기절한 듯 떨어지지만 이내 다시금 빛에 이끌려 다시 주위를 돌고 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 빛에 의존해 한 남자가 걸어온다. 영서는 하늘을 한 번 바라본다. 그리고 처음 이곳으로 오게 된 계기를 잠시 상상한다. 어린 시절, 그가 살던 곳은 가로등 하나 없어 지금처럼 밤에 잘 돌아다닐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고요한 밤하늘이 싫었다. 풀 벌레 소리나 개 짖는 소리만 나는 그곳이 싫어 영서는 도시로 향했고 이제는 어느새 도시에 적응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가로등에 처박히는 벌레들보다 조용히 풀 벌레가 우는 소리가 그립다.


영서의 회상을 막는 건 벨 소리이다. 친구의 전화다. 오래된 친구는 아니고, 이곳 이 도시에서 만난 친구로 퇴근 시간이 비슷하고 관심사가 비슷해 친해지게 되었다. 그는 영서에게 주절주절 회사에서 있던 일을 보고한다. 영서는 네. 네. 짧은 대답과 아. 아. 하는 탄식을 반복한다. 집 앞까지 다 온 영서는 이를 핑계 삼아 연락을 황급히 마무리한다. 집에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다. 방안의 어둠은 어린 시절의 밤하늘보다 더 짙다. 창문 바깥에는 술 취한 사람들의 소리가 집 안에는 건물 어디선가 팬 돌아가는 소리가 영서를 반긴다. 커튼으로 가려도 불 빛은 반짝반짝 영서의 방 안을 비춘다. 영서는 방 안의 불을 켜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하루의 피로를 모두 씻어 내고 텔레비전을 킨다. 또 다른 빛과 소음이 영서의 하루를 마치게 한다.



눈을 떠보니 모든 게 하얗다. 영서는 눈에 둘러싸였다. 멍하니 하늘을 보니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 하얀 눈이다. 영서는 이 눈을 보며 괜히 눈물을 흘렀다. 어린 시절 그는 눈 내리는 날을 유독 싫어했다. 다른 친구들이나 한 살 어린 동생만 하더라도 눈이 내리면 신나서 아침 일찍 나가 놀았다. 영서는 그래서 그게 싫었다. 가끔은 동생이나 친구들과 같이 눈사람도 만들고 같이 눈싸움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눈이 오는 날이면 오히려 더 잠을 잤다. 영서는 그런 어린 날이 떠올랐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이제는 그 시절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것을 깨닫는다. 그 순간 다시 장면이 바뀐다. 익숙한 집 안 천장이 보인다. 손을 뻗어 핸드폰 속에 시간을 확인하고 싶지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영서는 체념하고 가만히 다시 잠에 든다. 주말이 시작된다.


영서는 일어나자마자 씻는다. 혹시나 창 바깥을 보는데 눈은 오지 않는다. 다만, 날은 흐리다. 베개에 남은 눈물 자국을 보니 괜히 부끄럽다. 씻고 나니 영서는 멍해진다. 어제, 아니 그제까지만 해도 주말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는데 막상 주말 아침이 되니 크게 감흥이 없어진다. 띠링 울리는 벨소리는 관심 없는 광고다. 띵동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밥이 배달 왔다. 영서는 밥을 먹는다. 띠링 다시 벨소리가 울린다. 가족의 연락이다. 영서는 엄마와 통화한다. 영서는 말한 대로 잘 있어야 한다. 민망함에 쓴웃음을 짓고 주섬 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영서는 근처 생긴 큰 카페에 가기로 결정한다. 현관을 나가니 비가 내린다. 영서는 잠시 현관 앞에서 고민하다가 우산을 챙기기로 한다. 우산을 챙기는 김에 신발도 바꾼다. 양말이 젖지 않을 만한 신발로 바꾸고 카페로 향한다.



카페는 북적북적 손님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영서가 혼자 앉아 있을 공간은 있다.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른 손님들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영서는 자리에 앉아 주문한 음료를 마신다. 영서는 이 카페에서만 파는 음료를 골랐다. 잠시 턱을 괴고 카페를 조심히 둘러본다. 영서가 그러는 이유는 이 카페에 본인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다. 영서는 본인 스스로 적응이 되었다 싶어 책 한 권을 꺼낸다. 직장 동료에게 추천받은 책이다. 추천받을 땐 꽤 흥미로워 바로 주문했고, 읽을지 말지 고민할 새 없이 책은 하루 만에 왔다. 영서는 앞 뒤 책 커버에 있는 글을 먼저 본다. 그리곤 목차를 확인한다. 막상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아니 애초에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영서는 그렇게 책을 덮고 카페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그렇게 본인을 장식한다. 괜히 핸드폰만 처다 본다. 영서는 카페에 왔으니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영서는 카페에 왜 왔을까? 영서는 한 모금 음료를 마시고 조용히 컵을 본다. 컵엔 이전에 층이 쌓인 흔적만 남았다. 연한 갈색빛과 얼음만이 보인다. 영서는 괜히 그 모습이 싫어 다시 한 모금 음료를 마신다. 이제 음료 잔에 녹을 준비를 하는 얼음만 남는다. 핸드폰을 열어 무의미한 영상을 본다. 잠깐 미소가 번지지만 마음에 와닿지는 않다. 영서는 한 시간이 지나고 삼십 분을 채우고 일어나려 한다. 그때 영서 귀에 주변 테이블의 대화가 들린다. 영서 고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서는 나가려던 몸을 다시 내려놓고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어쩔 수 없이 책을 피고 읽는 척을 한다.



한쪽은 영서와 같은 고향 사람이다. 자세히 들으면 마을은 달라도 이야기하는 지명들이 영서가 아는 곳이다. 다른 한쪽은 이 도시의 사람인 것 같다.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주로 듣고 맞장구를 친다. 영서와 고향사람은 열심히 고향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곳은 발전이 없고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들이다. 다른 한쪽은 기계적으로 맞장구를 치면서 같이 그곳에 대해 욕을 한다. 맞장구를 듣던 한쪽은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는지 말을 돌린다. 그렇다고 너무 나쁜 곳은 아니다. 그래 그곳은 너무 나쁜 곳만은 아니었다. 영서는 마음이 불편해져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간다.


집에 도착했을 즈음 카페에 우산을 두고 온 게 생각난다. 영서는 고민한다. 다시 가서 우산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버려야 할지. 확실한 건 그 카페에 다시 갈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문득 엄마와 있던 일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영서는 우산을 자주 잃어버리고, 망가트렸다. 엄마는 늘 그런 영서를 불평하며 비만 오면 잔소리하듯 영서에게 우산 제대로 챙기라고 말했다. 영서는 투덜투덜거리면서 똑같이 망가트리거나 잃어버렸다. 이제는 우산 하나 얼마 하지 않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면 바로 카페에 가서 찾아오라고 할 것이다. 영서는 집에 다 와서야 다시 카페로 가 우산을 챙긴다. 이미 그 손님은 카페를 떠났다. 영서는 우산을 다시 챙기고 집으로 갔다.



영서는 익숙하게 텔레비전을 킨다. 텔레비전 속엔 어딘가로 여행 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밝게 웃으면서 여행지를 소개한다. 영서는 조용히 여행을 꿈꾼다. 지금 이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아예 말도 안 통하는 그런 곳에서 조용히 있고 싶다. 영서는 핸드폰을 열어 갈 만한 여행지를 찾아본다. 머릿속으로 언제 갈 수 있는지 날짜를 고민하고 예산을 정해둔다. 그러나 영서는 본인이 실제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핸드폰의 화면이 꺼지고 영서의 얼굴을 비춘다. 띠링 핸드폰이 다시 불을 낸다. 친구의 연락이 왔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다. 영서는 그 연락을 멍하니 보다가 텔레비전을 끄고 전화를 건다. 친숙하지만 힘없는 목소리에 영서 또한 쓴웃음을 지으며 친근하게 말을 한다.


영서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엔 일요일 밤이다. 영서 집 앞 가로등이 유독 깜빡인다. 갑자기 추워진 날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벌레들이 사라졌다. 영서의 입엔 하얀 입김이 나온다. 주말이 다 지나갔다.



어디선가 본 글이 있다. 나방은 하늘을 향해 날도록 진화를 했다고. 인공조명이 많아지고 나방은 인공조명을 하늘에 뜬 빛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나방은 끊임없이 조명의 주위를 돈다. 그러나 그 빛은 나방들에게 감각적 과부하를 일으키고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든다. 나방은 이제 빛을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빛 주위를 돈다. 나방은 빛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런 나방의 모습을 보고 마치 불 속에 달려드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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