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마가 시작됐다. 에어컨이 없는 그의 자취방에 탈탈탈 하고 선풍기만 돌아갔다. 피곤한 듯 몸을 누위고 잠에 들었다. 잠에 들면 머릿속의 생각들이 조금은 지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히려 생각들은 더 커졌다. 번쩍. 빛이 그의 창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몇 초 뒤 천둥이 몰아친다. 쿠구궁- 서우는 눈을 떴다. 고개를 들려 하지만, 이내 움직이지 않는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서우는 목을 흔들거나,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흔들어보려 했지만 모든 시도들은 실패했다. 그는 지처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한다.
너는 … 행복해질 거야.
서우의 귀에 낯선 여자의 작고 나른한 말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시 눈을 뜨고 그 목소리의 출처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꼼짝없이 그 소리를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 소리를 기억하려 애를 쓰려하지만 이내 그는 잠에 빠졌다.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지독한 장마가 다 끝났다. 탈탈탈 돌아가는 선풍기도 햇볕의 열기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서우는 혹시나 몸이 아직도 굳었을까 봐 이리저리 목부터 돌려 보았다. 이내 목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걸 느끼곤 안도했다. 서우는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일어나 선풍기로 향했다. 선풍기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밤새 흐른 땀을 식혔다. 물을 한 잔 마셨을 때, 머릿속으로 낯선 여자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너는 … 행복해질 거야.’ 그 말은 분명히 서우 본인에게 한 말이다. 그는 볼 수 없었지만, 그 말은 분명히 자신에게 했다고 믿었다. 서우는 좀 더 고민했다. 몸은 아침에 늘 하던 행동을 했지만, 머릿속은 어젯밤 꿈과 같은 일들을 생각했다.
2)
그가 그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됐던 건 며칠 뒤 친구인 현서와의 대화였다. 수강신청을 마치고 현서와 만나기로 했다. 서우는 현서를 만나러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 한 소리를 들었다. “행복해지세요.”라는 이 말이었다. 서우는 그날 현서와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며칠 전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며칠 전에 꿈을 꿨어. 몰라, 꿈인지 악몽인지, 가위눌린 건지. 그거 알지? 막 잠에서 깬 거 같은데 몸이 안 움직이고 그런 거.
서우는 횡설 수설하며 이야기를 했다. 현서가 하던 말을 듣지 않았고, 현서가 말을 멈추자 다급하게 이야기를 했다. 평소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서우는 이 얘기를 현서에게 하고 싶었다. 현서는 그런 서우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래 가위눌렸나 보네? “
응, 그거. 가위눌려서 몸이 막 안 움직이고 나중에는 눈뜨는 것까지 어려워지는 거. 그런 일이 처음 일어났어. ‘아 이런 게 가위눌린 거구나’라고 생각했지. 잠이 들려고 할 때쯤 누가 말 하더라고.
서우는 현서의 공감에 더욱더 빠르게 말을 했다. 현서는 그런 서우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 그래? 귀신인가 보네?”
모르겠어. 귀신인지. 막. 나에게 ‘결국 행복해질 거야’라고 그렇게 그렇게 말했어. 나는 눈을 뜨려고 했는데 안 떠지더라고. 그래서 그대로 잤어.
서우는 말을 다 토해내니 편해졌다. 서우에게 필요했던 건 그런 것이었다. 그가 가진 그런 이상한 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쏟아내는 것,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게 되면 안 될 것 같은 것이었다. 현서는 그런 서우의 기분을 잘 이해하고 들어주었다. “그래? 그래서 또 무슨 일이 있었어?” 현서는 서우의 말을 거들었지만 서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그게 전부야.”라고 말한다. 서우가 할 일을 다 마쳤기 때문에 둘의 대화는 싱겁게 끝났다. 그러나 서우가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다시 생각은 밀려 들어왔다.
결국, 행복할까?
서우는 다시 한번 더 그 상황을 떠올리려고 한다. 침대에 누워 똑같이 고개를 돌려 본다. 애석하게도 고개는 잘 돌아간다. 그는 누워 눈을 감는다. 생각이 옅어질 때쯤 다시 한번 더 그날의 말이 떠오른다. ‘너는 … 행복해질 거야.’ 서우는 마음속으로 그 말을 되네인다. ‘너는 결국 행복해질 거야.’ 그날 서우의 생각은 평소보다 늦게 그러나 조용히 꺼졌다. 선풍기 소리만 탈탈탈 들리고 고요한 밤이다.
3)
바쁜 날이 시작됐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고 서우는 팀플 과제와 개인 과제들, 졸업 준비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현서와 두 과목정도 같이 듣고 점심을 먹었다. 현서는 서우에게 넌지시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했다. “가위는 그리고 또 눌렸어?” 서우는 현서의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문했다. “무슨 가위?” 서우는 이윽고 여름에 있던 일을 떠올리고 현서에게 말했다. “딱히? 없었어.” 현서는 서우의 반응에 별일 아닌 듯 흘려보냈다.
서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집 안이었다. 그날 밤, 현서와 다른 친구들과 한창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 어느새 눈을 뜨니 서우는 익숙한 자취방에 누워있었다. 탈탈탈 선풍기 소리에 서우는 안정감을 느꼈다. 선풍기 소리가 툭 하고 멈췄다. 서우는 고개를 들어 선풍기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서우는 이리저리 뻣뻣해진 몸을 풀려고 애썼다. 서우는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팔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고, 억지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선풍기를 켜려고 향했다.
너는 결국 행복해질 거야.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서우는 있는 힘껏 눈을 떴다. 그가 몸을 움직여 선풍기를 향했던 것은 꿈이었다. 낯선 여자가 그를 응시한다. 서우는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서우는 어젯밤 선풍기를 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을 뜨고 확인했을 때, 선풍기는 그대로 멈춰있었다. 창문 틈 사이로 부는 바람이 방 안을 시원하게 했다. 서우는 앉아 생각했다. 어제의 일이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 현서와 저녁에 다시 만나 자주 가던 술집에 들어갔다. 마침 술집에 현서의 친구 몇 명이 있었고, 둘은 자연스럽게 합석해서 술을 마셨다. 평소에는 잘 못 마시는 서우지만 그날은 평소보다 곱절을 더 마시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억이 끊어졌다. 현서가 그를 자취방까지 데려갔고, 띠리링 문 닫는 소리까지 들렸다. 여기까지는 확실했다. 평소 서우는 잠들기 전에 침대 옆 물컵에 물을 따르고 잔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날 때, 물컵은 비워있었다. 서우는 그렇게 선풍기를 3시간 예약으로 틀고 침대에 바로 누워 잤다. 눕자마자 바로 잔 것 같다. 선풍기가 꺼질 때쯤 깼으니까. 누운 지 3시간이 지난 것이다. 서우는 왜 하필 선풍기가 꺼질 것을 예상하고 깼는지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선풍기를 다시 키려고 움직였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서우가 선풍기를 켜려고 아니 선풍기가 꺼지기 바로 직전에 일어난 것부터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우는 처음 잤을 때의 모습과 그대로 깬 것을 비교하며 꿈인 것을 유추했다. 이제 서우는 그 여자를 떠올린다. 서우에게 한 번 더 같은 말을 했다. 단발머리에 아름답게 생겼다. 무표정으로 서우를 응시했다. 그 말은 그녀의 입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귓속에 울렸다. 서우는 애꿎은 선풍기를 한대 쳤다. 혹시나 해서 선풍기를 틀고, 5분 정도 예약을 해보았다. 애석하게 선풍기는 5분이 지나자마자 바로 툭 하고 꺼졌다.
4)
서우는 그날 하루를 망쳤다. 아침부터 팀플 조별 모임에 지각했다. 회의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았다. 서우는 점심도 거르고 어딘가 구석에서 쉬고 있었다. 현서는 그런 서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우는 현서의 모습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평소라면 지금 같은 기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현서를 바라보거나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을 서우였지만, 현서의 표정에 동질감을 느꼈다. 현서가 먼저 말을 걸었다. “속은 괜찮냐?” 현서의 말은 그런 서우의 동질감을 깨트렸다. “속?” 서우는 그제야 어젯밤에 있던 술자리를 기억했다. 서우는 맥 빠진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했다. 현서는 서우의 그런 감정 변화까지 느끼지 못했다. 현서는 이온 음료를 서우에게 내밀었다. “어우, 나는 힘들다. 자. 점심도 안 먹은 거 같은데 이거라도 마셔.” 서우는 현서의 음료수를 받으며 고민했다. 어제 일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현서 얼굴을 보니 지금은 말할 시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서우는 자연스레 기억이 끊긴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 나 뭐 사고 치거나, 막말한 거 있냐?” 현서는 서우의 말을 듣더니 크게 웃었다.
현서는 어제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해 줬다. 어제 현서 친구 중 고대 그리스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서우가 그 학생의 말에 계속 맞장구를 쳤다는 야이 기였다. 현서는 평소 서우라면 낯설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말하는 걸 꺼려했을 텐데 어제는 그런 모습 하나 없이 오히려 친근하게 대하는 게 웃기고 신기했다. 서우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친구 이름을 이야기하며 웃는 현서의 말에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요즘은 또 그런 꿈은 안 꿔?
서우는 갑자기 물어보는 현서의 질문에 당황했다. “응?” 서우는 현서의 질문에 반문했다. “아니, 어제도 그 친구가 고대 예언가 하며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거기에 꽂혀서 너 귀신 꿈꾼 거 말했잖아.” 현서는 태연하게 어제 일을 마저 이야기했다. 서우는 현서의 말 중 ‘귀신 꿈’이라는 말에 짐짓 서운했다. 서우는 그제야 어제 일어난 일들이 떠올랐다. 고대 그리스를 공부하는 학생이 테바이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눈이 먼 오이디푸스와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라는 인물을 설명해 줬다. 서우는 예언이라는 말에 꽂혀 그 이야기를 특히 더 자세히 들었다. 기세 등등 한 오이디푸스왕이 본인의 비극적인 미래를 이야기하는 테이레시아스를 쫓아냈다는 이야기였다. 서우는 그 예언가에 대해 괜히 감정적으로 동화가 되었고 술을 마시며 오이디푸스를 비판하며 화를 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더 불쌍하지 않냐? 결국, 비극적인 일들이 다 일어났잖아?” 현서는 어제 서우의 말에 반박했다. 서우는 현서의 그런 말에 관심이 없는 듯 적당히 공감하고 대화를 마쳤다.
서우는 현서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서의 반응이나 태도를 보고 서우는 참았다. 둘은 다음 날 같은 수업에서 다시 만났다. 서우는 어제의 태도에 퉁명스레 현서를 대했고, 현서는 그런 서우의 태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현서는 서우에게 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이거 어제 그 친구가 너한테 주라고 하더라?” 현서의 평소와 같은 태도에 서우는 애써 가지는 서운함을 누르고 말했다. “어떤 책인데?” 책은 고대 그리스 신화나 전설들을 모은 책이었다. “몰라. 무슨 중세 시대 프랑스 작가가 고대 그리스를 연구하다가 쓴 책 이래.” 서우는 현서가 받은 책을 폈다. 책엔 그리스의 여러 예언에 대해 설명해 두었다. “오 너 자신을 알라.” 현서는 책의 일부에 대해 아는지 얘기를 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걸로 알려졌잖아.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라는 그 말은 실제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라’라고 말하는 거래.” 현서는 서우에게 자랑하듯 설명했다. “네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아라.” 서우는 나지막이 이야기를 했다. “응 그런 거지.” 현서는 서우가 한 말이 혼잣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답했다. 서우는 현서에게 다시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었다.
5)
어제 아니 그제 똑같은 꿈을 꿨어. 이번엔 눈을 딱 뜨니까. 한 여자가 보이더라고.
현서는 침착하게 서우의 말을 들었다. “그래? 또 가위눌린 거야?” “응 귀신 꿈이 아니라 그냥 가위눌린 거야.” 서우는 둘의 차이를 구별을 해야 한다는 듯이 정확하게 서우를 보고 이야기했다. “그래, 가위. 기분은 좀 괜찮아?” 현서는 그런 서우의 태도에 집중하기보다 서우가 진심으로 걱정되어 물어본다. “응 괜찮아. 아마?” 서우는 실제로 아프거나 다친 곳이 없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서우는 복잡한 심경에 현서를 보고 이야기하기보다 책에 집중했다. 여러 인물들과 사건을 설명했고 그중 한 그림에 서우는 시선을 멈추고 지긋이 바라봤다. 현서는 옆에서 무어라 말하고 있지만 서우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책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있는다.
카산드라.. 이 여자인 거 같아. 내가 가위를 눌릴 때 본 여자가.
서우는 모든 생각이 정리가 된 듯, 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카산드라? 누구였지?” 현서는 궁금한 듯 서우의 책을 가져다가 카산드라에 대해 찾는다. 서우는 그런 현서의 태도에 책을 덮는다. “그냥 그런 거 같아.” 서우는 현서가 카산드라에 대해 찾아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말을 마쳤다. 서우는 도망가듯 현서를 피해 집으로 갔다. 집에서 서우는 다시 책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카산드라가 나오는 부분을 읽고, 그가 들은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서우가 스스로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답을 쉽게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서는 카산드라에 대해 찾아보고 서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카산드라가 정말 맞을까?” 서우는 확신했다. 그 여자는 카산드라가 맞았다. 불행을 알려주는 여자. 서우는 책 속에서 정의한 카산드라에 대해 믿었다. 서우는 그날 술자리에서 이야기한 테이레시아스와 그의 꿈속에 나타나 저주 같은 예언을 한 카산드라를 생각했다. 그리스의 모든 예언들은 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 같다. 서우는 그렇게 그리스의 예언을 평가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에게 한 말이 결국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아니면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서우는 현서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말을 믿어야 할까?